휴대폰 사주세요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4-28 0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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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큰애가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른다. 하루는 태권도에서 배가 아파 쉬었다고 한다. 배가 왜 아팠냐고 물었다. “태권도에서 나 빼고 다 휴대폰이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배가 아파”라는 말에 어이가 없다. 휴대폰을 갖고 싶은 마음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났나 보다.


담임선생님과 전화 상담하는 주간이었다. 반에 거의 다 휴대폰이 있는지 물어봤다. 3분의 2 정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저학년 때는 휴대폰이 없는 게 좋지만 고학년 되면 사줘야 할 거라고 덧붙였다. 스무 살 되는 1월 1일에 사준다고 말해 놨는데 언제까지 먹힐지 모르겠다. 교실에서는 휴대폰을 못 꺼낸다. 어떤 친구는 가방 안에 넣고 몰래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한 번씩 큰애 데리러 학교에 가면 애들이 휴대폰 하면서 학원 차 기다리는 모습을 본다.


내 휴대폰으로 큰애가 문자를 주고받을 때가 있다. 하루는 친해진 친구가 연락처를 물어서 내 번호를 알려줬다고 한다. 뭐하냐, 놀 수 있냐, 놀이터에서 보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전화도 온다. 내가 다른 일로 못 받으면 부재중전화가 7통씩 남는다. 안 되겠다 싶어 큰애와 친구한테 되도록 문자로 연락하자고 말했다. 큰애가 다른 친구한테도 내 번호를 알려주고 싶다는 걸 말렸다. 받을 때까지 몇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큰애가 방과후 수업을 듣고 온 날이었다. 평소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방과후 교실에서 누가 놔두고 간 휴대폰을 가져오고 싶었다고 한다. 큰애는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말았고 이내 주인이 와서 가져갔단다. 듣고 내심 놀랬다. “휴대폰을 가져오고 싶었어? 주인이 있는 건데 그러면 어떡해~” 타박이 먼저 나갔다. 큰애가 울컥하면서 짜증을 낸다. “갖고 싶었단 말이야!” 한참을 토라져 있다. 큰애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가끔 큰애가 학교 마치고 입이 삐죽 나온 채 터벅터벅 걸어온다. 그런 날은 친구가 휴대폰이 생긴 날이다. 태권도 마치고 울상이 된 채 걸어온 적도 있다. 자기 빼고 다 휴대폰이 있었던 날이다. 누구 누구는 시계폰, 키즈폰, 카카오폰이 있다고 아뢰기 시작한다. 유튜브 안 볼 거라고 공약도 건다. 이래도 저래도 타협이 없으니까 큰애가 울음을 터뜨리는 날도 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휴대폰이 생기면 타격이 크다. 큰애가 색종이를 편지 모양으로 곱게 접어 건넨다. “엄마 읽어봐.” 큰애에게서 비장한 눈빛이 감돈다. 친구도 생겼으니 나도 휴대폰을 사달라는 편지가 탄원서에 버금가게 적혀있다. 그날 밤 큰애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초등학생 때는 휴대폰을 사줄 생각이 없다, 스무 살이 1순위 고등학생이 2순위 중학생이 3순위다, 휴대폰은 장단점이 있다, 아직 너는 어려서 스스로 조절하기가 어렵다, 어른도 휴대폰을 조절하기 어렵다 등등 내 입장을 전했다. 큰애가 듣더니 그럼 중학생 때 사달라고 한다.


다행히 교회에는 휴대폰이 아직 없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있다. “그 언니도 아직 없고 그 오빠도 아직 없잖아”라고 말하면 큰애는 휴대폰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수두룩하게 댄다. 심지어 동생들 중에도 휴대폰이 생겼다고 하니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휴대폰 사달라고 나를 얼마나 볶아 대는지 모른다. “아빠는 엄마가 허락하면 해준다고 했단 말이야.” 이 무슨 협의되지 않은 말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혼자만 빠져나가다니 비겁하다. 자기 직전까지 휴대폰 말하다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다시 휴대폰으로 시작하는 날은 기운이 빠진다. 협박도 한다. “휴대폰 안 사주면 동생한테 더 심한 욕을 가르쳐줄 거야.” 이 지점에서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머리가 엉킨다.


휴대폰을 사주기 전까지는 이런 볶임을 겪을 거라 예상된다. 사달라고 조르는 마음도 이해는 된다. 큰애가 남의 휴대폰을 부러워하고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법이 현명한 걸까. 일단 기꺼이 볶임을 받겠다.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자유와 안 사준다고 버티는 자유 둘 다 공존하게끔 말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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