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 인간들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4-27 0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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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 보고서(2)

▲ ©문정훈 화가


운문 배너미 포수막

배너미 포수막은 집이라기보다는 얼기설기 쌓은 개딱지 산막에 가까웠다. 포수막에 있던 낯선 사내들이 나왔다. 산짐승을 쫓는 산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격식 따윈 따지진 않는다. 송호강이 두 사내를 소개했다. 이들 역시 북청산포대 모병에 합류할 지방포수들이었다. 신식 서양총을 소지한 진 포수는 지리산에서 왔다고 했다. 중이 중을 알아보듯이 냉혈인간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진 포수는 범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전설적인 포수였고, 봉두난발 사내는 왜병 잡는 동학쟁이였다. 때론 범보다 인정사정없는 사람 사냥꾼이 더 무섭다. 


모닥불에 노루고기를 구워 먹은 사내들이 포수막 관솔불 아래 모여 북지 행로를 모의했다. 무리가 지어진 만큼 우두머리를 정해야 했다. 별다른 이의 없이 도포수를 우두머리로 정했다. 그리고 각자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포수막 모의가 끝나자 후덥지근한 포수막을 하나둘 빠져나갔다. 관솔불에 연초를 붙인 송호강이가 화승총을 손질하고 있는 배내골 김 포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 포수, 구닥다리 화승총 버리라오. 그런 고철덩어리로 범을 어떻게 잡갔어?” 


“그런 소리 말게. 이래 봐도 명포수가 쓰던 총이라네. 탄환 구하기에 애먹긴 해도 불 뿜는 화력만큼은 신식 총 저리 가라네.” 


“아무리 좋은 화승총도 범 앞에서는 장난감이꼬마. 비 오면 못 쏘디, 바람 불면 못 쏘디, 칠보 팔 보 앞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쏘니깐 까딱하다간 모가지 날아가기 십상이지.” 


김 포수는 화승총을 개조한 구닥다리 단발총을 지녔는데, 그게 보기보단 강력했다. 당시만 해도 화승총이라도 지닌 지방포수는 손꼽을 정도였다. 반면에 살림이 포시러운 도포수는 곰 머리통도 날려버리는 강력한 미국제 윈체스터 5연발 라이플을 소지했다. 골짝 논 몇 마지기를 팔아야 장만할 수 있는 고가 총이었다. 


“김 포수, 개마고원 새외사관 들어 본 적 있갔어?” 


“가보진 않았지만 조선에서 범이 제일 많다고 들었네.” 


“듣긴 들은 기구만. 개마고원 떠받든 네 고개를 새외사관이라 하디. 후치령, 부전령, 황초령, 금패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꼬마.” 


말로만 듣던 개마고원 새외사관을 입에 올리자 소금 잠을 청하던 사내들이 관솔불 아래로 눈길을 주었다. 그렇잖아도 미지의 개마고원을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망해 가는 나라 꼴처럼 서양 사냥꾼들 각축장 된 지 오래라고 들었네.” 


“거긴 말이야, 범 내려오는 데야. 조선범, 만주범, 우수리범……. 범 종자들이 죄다 모여들디. 드물긴 해도 함북육진 돌아다니는 무산범도 있꼬마. 이 녀석은 우수리범보다 덩치는 작은 편이지만 사납기는 더 사납디. 걸리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뼈도 못 추려. 내래 범 사냥 온 아라사 사냥꾼 안내해주고 발품 값 받곤 했디.”


“자네 도끼 던지는 솜씬 예사롭지 않더군. 어디서 배운 재간인가?” 


“내래 풍산에 계신 울 아바지한테 배웠디.” 


“풍산이라면 늑대들과 싸우는 풍산개로 유명한 데 말이군…….” 


개마고원은 백두산을 주름잡는 산포수들이 많이 모인다. 특히 산포수들의 수족 노릇을 하는 풍산개는 늑대와 싸우는 명견으로 알려졌다. 


“조선만 아니라 청나라 아라사까지 알아주는 명견이디. 울 아바이 만주며 아라사며 가는데 마다 풍산개 데리고 다녔꼬마. 썰매 타고 창사냥도 하디. 내래 사냥꾼 핏줄 탔단 말임둥.” 


송호강은 쌍날도끼 하나면 어떠한 맹수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개마고원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사냥술 덕이었다.

한 가닥씩 하는 냉혈인간들

운문사에서 시오리 골짝에 틀어박힌 배너미는 초롱초롱한 별나라였다. 무더위를 식히려 나갔던 진 포수와 불매가 포수막으로 들어왔다. 물탕을 했는지 봉두난발 머리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진 포수, 보아하니 귀한 총 같은데 어디서 구했소?” 


보리짚을 깔아놓은 자리를 내어주던 도포수가 진 포수 쌍발총을 보고 물었다.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서양총이었다. 1890년대까지는 화승총 사냥 시대였지만 지금은 서양총 시대다. 


“바클레이라는 친구가 준 총이요. 같이 사냥 나갔다가 범을 잡았더랬소. 금화를 주길래 금화는 필요 없고 총을 달라고 했소.” 


진 포수는 지리산 범 사냥을 온 서양인 포수들이 섭외 일 순위로 꼽는 범 전문 사냥꾼이다.
“지리산에서 잡았소?” 


“아니요. 바클레이와 잡은 범은 유달산 범이었소. 진도에서 잡은 범이 있었소. 팔십 관 나가는 대호였소.”
“진도라면 섬 아니요? 범이 바다를 헤엄쳐 건넜단 말이요?” 


“그렇소. 먹잇감을 찾아서 헤엄쳐 온 범을 진돗개가 보고 짖어댄 모양이요. 섬사람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었소.” 


1896년 진도범은 조선 최초의 범 사진이다. 범을 잡은 상투포수는 엄청난 크기의 대호 등 위에 올라타고 포즈를 취했다. 한 손에는 쌍발총을 들었고, 다른 한 손끝에는 총알을 든 채 노려보고 있다. 주변에는 구경나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7년이 지난 1903년, 바클레이가 잡은 목포범 사진에도 상투포수가 등장한다.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1896년 진도범을 타고 있는 상투포수와 1903년 목포범에 나오는 상투포수가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에 범 사냥을 온 외국인 사냥꾼들은 지역포수들을 섭외해 몰이사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스미스라는 미국인이 같은 해에 조선범 한 마리를 포획한 사실이 있는데, 당시 포획한 호랑이 가죽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1896년 진도범

부북(赴北)의 길

먼동이 트자 길을 나섰다. 지방포수들은 먼저 지난밤에 포효가 들렸던 어두뫼 골짜기로 들어갔다. 배너미 산발치에서 올려다본 복호산은 산봉우리 뒤에서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물가 진흙에 찍힌 범 발자국이 북지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지방포수들은 복호산과 옹강산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좁혀 나갔다. 산기슭 넓쩍바위에서 식인범이 먹다버린 사리암 보살의 머리채를 발견했다. 포위망을 빠져나간 식인범은 옹강상 산자락을 따라 북상하고 있었다. 영천 구룡산 음부골에 서성이는 식인범을 발견했다. 앞서가던 진 포수가 총을 쏘았지만 달아나고 말았다. 범이 달아난 자리에는 먹다 만 노루 사체가 남아 있었다. 아직 피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봐서는 멀리 가지 않을 것을 직감한 사냥꾼들은 추적의 끈을 놓지 않았다. 누구보다 체격이 좋은 지방포수들은 호랑이 뼈에 버금갈 강골들이었다. 절벽바위에 뚫린 동굴에서 밤을 보내며 추적에 추적을 거듭했다. 


지방포수들은 영남좌도 산줄기를 탔다. 식인범과 다시 마주친 곳은 소백산 줄기였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만나는 해발 일천 미터 높이의 잿마루였는데, 이번에는 선질꾼이 변을 당했다. 한 번 사람 고기 맛을 본 범은 계속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선질꾼은 동해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지개를 지고 강원도 영월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식인범의 생태를 아는 지방포수들은 구덩이를 파고 잠복에 들어갔다. 예민한 범의 후각을 피하기 위해 마렵던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잠복해있었다. 질흙 같은 밤이었다. 미끈한 마고할미 봉우리에 식인범이 어렴풋이 보였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식인범은 이내 포수들 냄새를 맡고 사라졌다. 쫓기는 식인범은 다시 강원도 능선을 탔다. 지방포수들은 막상 사냥에 들어가면 끈질긴 투지는 고래힘줄 저리가라였다.


“조선 산이야 말로 호랑이 등뼈 아닌가. 여기서부턴 우리가 왔던 길보다 더 험하지. 꿋꿋이 견뎌야 되네.” 


지방포수들이 마천령산맥 끝자락에 놓인 강원도 철령에 도착하기론 궁근정 주막을 나선 지 근 보름 만이었다. 원산에서 한양을 오가는 길손들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철령 고개에는 왜경초소가 들어서 있었다.
“홍범도가 왜병 무기를 탈취한 뒤로 경계가 심해졌꼬마.”


“홍범도? 범포수 말이요?”


뒷심 좋은 사금부리가 물었다. 지방포수들 중에서 홍범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두산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홍범도 모르는 사람 없꼬마. 날으는 홍범도, 비호(飛虎) 포수로 불리디. 홍범도가 이 고개에서 왜병 총 12자루와 탄환, 군수품을 빼앗아 감쪽같이 사라졌거든. 그 길로 개마고원엘 들어가 포수 40명을 모병해 사격과 전법을 가르쳐 산포수 대오를 꾸렸더랬디. 지금도 개마고원 골짝에 숨어 왜경과 싸우고 있꼬마. 물론 행방은 늘 오리무중이디. 평양 우영 제1대대 말단 나팔수 출신이 어떻게 뛰어난 병법을 구사했는지 대체 모를 일이고.” 


지방포수들은 철령을 에둘러 된비알을 택했다. 산타기에 이골이 난 무쇠다리들이었지만 홍두깨 된비알을 오르기란 코가 댓자로 빠질 지경이었다. 산중 모닥불을 피워가며 노숙을 하고, 짐승을 잡아 끼니를 해결하며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 1907년 조선범 영역 지도. 진달래 있는 곳에 호랑이가 있었다. 조선범은 조선,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의 지배자였다. 색채 부분은 지금의 호랑이 밀집 서식 지역이다.

반구대범 눈부리


나는 너희들을 보고 있어
내 푸른 눈빛은 천리를 발하고
내 눈과 마주치면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지
나는 피를 좋아해
‘불칼’, ‘작두’, ‘사형집행관’에겐 자비란 없지
그러니 까불지 마
나한테 걸리는 날이면 대갈통이 와작와작 씹힐 테니


※ 이 글과 그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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