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운으로 가는 길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04-26 0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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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농생태학의 이해(4)
▲ 무경운 밭에 감자 심기

 

토양은 거대하고 강력한 탄소 저장고입니다. 이 저장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불안정한 상태로 만드는 산업이 농업입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30%가 농업에서 비롯되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배출을 차치하고 농사짓는 것만으로도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은 농민의 입장에서 곤혹스럽습니다. 


농민이 일상적으로 하는 밭갈이(경운)로 인해 토양에 침착해 있던 탄소가 배출됩니다. 이뿐 아니라 작물을 심지 않는 기간에 맨흙으로 방치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비닐을 이용한 피복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어 폐비닐에 의한, 말하자면 2차 탄소 배출도 심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밭갈이의 역사

밭갈이는 인류가 농사를 지은 이래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농법입니다. 과거로 갈수록 밭은 될 수 있으면 깊이 파야 한다(심경)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4~5세기경 새로 개발된 철제 농기구와 소를 활용해 심경법이 널리 퍼졌습니다. 밭을 깊게 파는 것이 일반화된 이유는 이전에 갈리지 않은 토양 깊은 곳에 있는 유기질 성분을 끌어올려 양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밭갈이로 얻는 것은 유기질만이 아닙니다. 바람과 비 등으로 굳었던 겉흙(표토)을 잘게 부숴 공기와 물이 잘 통하도록 하는 등 토양의 물리적 성격을 일시에 향상시켜 줍니다. 밭갈이한 흙에 파종한 씨앗들은 뿌리 내림이 원활해 초기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풀을 제거하거나 발아를 억제하는 수단이어서 김매기를 줄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밭갈이는 농사의 시작이었으며, 농사철이 끝나는 철이면 더욱 깊이 갈아 이듬해의 원활한 농사를 도모했으므로 농사의 끝이기도 했습니다.
 

▲ 농사 안 지어서 한가한 냥이



토양 훼손과 고갈


초기의 농업에서는 인구에 비해 농지로 쓸 땅의 비율이 워낙 높아 밭갈이는 최적의 영양 공급 방편이 돼 주었습니다. 얼마든지 옮겨 다니며 유기질이 풍부한 땅을 개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나 사회, 경제적인 변화로 농토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면서 밭갈이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토양 속에 있던 유기질이 고갈되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그에 따라 토양 건전성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천연자재인 유기물을 전혀 투입하지 않은 채 농산물을 통해 그것의 이탈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결과입니다.


농민은 거름과 퇴비를 만들어 투입하는 것으로 점차 척박해지는 토양에 대처했습니다. 그러나 투입과 산출에서 늘 산출이 많은 형태여서 경작지는 만성적인 유기물 부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유기질은 단순히 영양분이 아니라 지력을 보존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경작지는 일방적으로 척박해지는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척박을 일거에 해소해 준 것이 화학비료의 발명입니다. 작물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직접 공급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죠. 그런데 화학비료에 편승한 농업은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해 역설적으로 토양 훼손과 고갈의 지름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토양의 무기물 구성이 왜곡되고, 편협하게 재편됨으로써 원상복구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 현대농업의 실상입니다.
 

▲ 최근 수집된 토종 콩 종자

 


밭갈이의 교훈

결과적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됐으나 우리는 밭갈이의 발견이 농업 생산의 증대에 크게 기여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핵심은 토양의 물리적 성질을 최적화하는 것인데, 밭갈이를 중단하는 경우 이 성질을 복원하는 일이 선행돼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토양에 충분한 유기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면, 밭갈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요컨대 밭갈이를 하지 않으면서 밭갈이로 얻었던 이익을 실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밭갈이를 하지 않기 위한 단계들

농생태학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생태계의 설계와 실천으로 급속히 전환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그 전환의 첫 단계는 좀 더 건전한 먹을거리 생산 체계를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일반화된 농법의 틀 안에서 생산성과 경제성을 포기하지 않는 전략을 말합니다.


무경운의 도입은 이러한 원칙 안에서 이뤄져야 무경운 자체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과 경제성을 유지하면서도 밭갈이를 하지 않는다면 산술적으로 농민에게 큰 이득입니다.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불가역적 농법 전환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이 단계들은 농민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가역적으로 설계합니다. 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선수 조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연중 놀리는 토양이 없어야 한다: 산과 들의 토양 표면은 사시사철 빈틈이 없습니다. 풀이 자라거나 낙엽 또는 식물의 사체로 뒤덮여 있습니다. 핵심은 흙 속에 뿌리를 박은, 살아 있는 식물입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토양의 미생물이 활성화되도록 도우며 비와 바람 햇볕으로부터 토양의 상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봄부터 가을까지 농작물을 심어 거두고 나서 밭을 놀릴 게 아니라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자라는 작물을 심어야만 합니다. 수확 가능한 농작물이 가장 좋으나 여의치 않을 경우 다양한 녹비작물을 섞어 빈 밭 없이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2) 덮개: 이른바 멀칭은 밭갈이와 무관하게 농사의 필수항목입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겨우내 온 밭을 비닐로 덮어주는 것만으로도 토양 유지에 커다란 도움을 받게 됩니다. 가장 효율적인 덮개는 작물 자체이며, 작물의 파종 또는 모종 시기에는 유기물이 될 것입니다. 유기물은 겨우내 기른 녹비작물의 사체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3) 경지 정리: 무경운 실시 후에라도 부분 밭갈이가 가능하도록 모든 밭의 이랑과 고랑의 길이와 너비 등을 그에 맞도록 재구성합니다.
 

▲ 오종종하게 올라온 고추 모종



무경운과 체계-전환 1단계


당연한 말이지만, 밭갈이를 하지 않는 무경운농법은 농사의 생산성과 경제성을 높여줄 수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농사체계를 세우는 데에 방해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무경운 농법의 설계는 전체적인 농사방식의 틀 안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이를 전환 1단계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사의 첫 단계의 한 방편이 무경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농업생태계 전환의 1단계는 비용 부담이 크고 환경에 해를 입히는 투입재의 사용과 소비를 줄여 농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투입재는 비료와 농약을 포함하는 거의 모든 농자재를 말합니다. 


투입재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투입재 소모와 거기서 생기는 부정적 영향도 줄여야 합니다. 이는 일반화된 농업 연구가 주목한 점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적의 작물 간격과 밀도, 향상된 농기계, 개선된 농약 적용을 위한 해충 감시, 작업 시기 선택, 최적의 비료와 관개 실행을 위한 정밀농업’ 등이 그 사례입니다. 이런 노력은 현대농업의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키긴 하지만, 외부 투입재에 대한 의존성을 깨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1단계에서는 무척 중요하고 필수적인 사안입니다. 전환에서 제1의 과제는 생산성과 경제성을 잃지 않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다음 회에 계속)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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