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문화 조성에 앞장서는 이태원 나인로드(9-road)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1-09-13 15: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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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울산의 청년유출 문제와 스타트업 활성 방안

(1) 최근 5년간 감소 중인 울산 인구유출, 해법은 없는가?
(2) 공간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이태원 나인로드(9-road)
(3) 노잼도시가 아닌 유잼도시로…양천구 청년정책네트워크를 찾다

 

▲ 나인로드(9-road) 황윤호 대표는 사람 냄새 나는 좋은 모임을 자신도 펼쳐보고자 우선 이태원의 게스트하우스를 열면서 소셜다이닝 나인로드를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이기암 기자


울산의 거리에는 왜 사람이 없는가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방들은 인구유출 문제가 실제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울산의 경우도 삼산동과 성남동 등 도심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특히 중공업의 쇠퇴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동구 지역은 국회의원 선거구 지정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구가 늘기 위해서는 젊은 층의 인구가 늘어야 한다. 경기가 안 좋아 유입이 안 된다면 빠져나가는 것만이라도 막아야 한다. 젊은 층을 잡아두려면 무엇보다도 그들만의 거점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결과제다. 우선, 울산의 젊은이들은 어디서 즐길까. 울산에서 그나마 사람이 모인다는 삼산동과 성남동을 생각했다.
 

삼산동 거리를 다녀보면 백화점과 터미널, 그리고 크진 않지만 적당히 다닐 수 있는 상권이 형성돼 있어 어느 정도 사람이 붐비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백화점 안에서만 주로 머무는지 광역시치곤 거리 자체가 활성화돼 있진 않았다. 전라도 광주의 충장로 정도만 돼도 ‘아, 이래서 광역시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성남동으로 가보자. 그나마 삼산보다는 보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넓다. 하지만 뭔가 거리가 일방통행식이다. 상권이 전체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느낌으로 걸어도 재미가 없다. 사람이 모이려면 우선 공간이 필요하다. 부산의 카페거리, 청주의 벽화거리처럼 특화된 테마거리 조성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의 거점공간을 시에서 곳곳마다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무작정 관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젊은 층도 많은 서울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들은 어떻게 모이고 모여서 무엇을 하는가?
 

사실, 서울이라고 하니까 워낙 인구가 많고 젊은이들이 알아서 잘 모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대학을 다닐 때야 동기나 선후배들이 많아 어울리는 모임이 많겠지만 졸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 서울의 수많은 청년은 지방에서 올라와 직장을 잡고 산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청년들은 조금이라도 싼 방을 찾기 위해 성인 2명이 잠만 잘 수 있을 만한 굉장히 좁은 원룸에 지내고 있다. 굉장히 좁아도 지방보단 훨씬 비싸다.

 

▲ 작년에 이태원에서 서울역 인근으로 옮겨온 나인로드(9-road). ⓒ이기암 기자

 

서울시청 청년정책 담당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서울에서 지내는 청년들 대다수가 외로움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그 외로움이 길어지면 우울증에 이르게 되는데, 우울증에 걸리거나 걸리기 쉬운 청년들을 대상으로 서울시 차원에서도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서울청년 마음잇다’의 경우 작년부터 시행된 정책으로 마음이 외로운 청년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최대 7회까지 심층 심리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효과가 좋아서인지 재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인원 마감이 된다고 한다.

 

본 기자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청년이 살아남는 방법은 빨리 가정을 이뤄 안정적인 행복감을 누리든지, 아니면 일에만 빠져 헛생각이 들지 않게 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어렵다면 본인 스스로 모임을 찾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모임이란 것이 한 번 가입하면 계속 참여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고 또 가입회비란 것도 있어 쉽사리 그 단체에 들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강제적이지도 않고 때론 비용도 부담 없는 사적 모임이 있는 곳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태원의 나인로드(9-road)다.

사적 모임 공간, 이태원의 나인로드(9-road)

나인로드(9-road)란 말 그대로 ‘9가지 길’이라는 뜻으로 꼭 번듯한 직장을 다니거나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닌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나인로드 황윤호 대표에게 왜 숫자 ‘9’를 넣었냐고 물으니 한 자리 숫자 중에서는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인로드는 7년 전 이태원에서 처음 시작했다. 당시 소셜다이닝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 황윤호 대표는 어떤 한 공간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간 공통주제를 갖고 진솔하고도 사람 향기가 느껴졌던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람에 대한 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에게 이러한 사적 공간은 때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쉼터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이 모임 때문에 자신이 외롭고 힘들었을 법한 서울 생활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자신의 맘을 100% 알아줄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만 몇 있어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하던가.
 

황 대표는 이같이 사람 냄새 나는 좋은 모임을 자신도 펼쳐보고자 우선 이태원의 게스트하우스를 열면서 소셜다이닝 나인로드를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공간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주방이 큰데 주방에서 음식을 같이 나눠 먹기 위한 것이며 인원에 따라 분절된 테이블을 놓고 있어요.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이 주 고객층인데 가끔 40~50대도 와서 인생의 좋은 경험담을 들려주곤 합니다.” 황 대표는 자신의 모임이 꼭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50대는 전망 좋은 대기업을 다니다 사표를 내고 자영업을 하며 제2의 인생기를 보내고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40대는 좋은 직장을 다니다 제주도에 가서 산다고 하더니,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 가서 산다고 하더라며 그들만의 독특한 인생살이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이 다 끈끈한 연을 계속 이어가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마음이 맞았다 싶으면 구성원들과 같이 여행도 다닌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커피술 만들기, 맥주 만들기, 와인 테이스팅 모임 등이 인기가 많았어요. 와인 모임의 경우 편안하게 사람들과 와인 한 잔 마실 공간이 없었는데, 이곳은 와인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와인에 대해 얘기도 하고 즐길 수 있으니깐 사람들이 부담이 없었던 거 같아요.” 황 대표는 무엇보다도 부담감이 없는 모임이라는 게 나인로드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말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독서 모임이라고 한다. 책을 통해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재미는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날 수 없다고 한다.

 

 

▲ 나인로드(9-road)에 들어서면 커피머신과 장신구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돼 있다. ⓒ이기암 기자

나인로드의 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의 인맥도 쌓고, 또 그 인맥을 통해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인생길도 모색한다고 한다. 하지만 황 대표는 다른 길로 가기 위해 무작정 직장을 관두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느 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삶이 너무 재미없다며 자신은 술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고 술과 관련된 회사에 들어가서 판촉도 해보고 싶다고 하자, “그렇게 살아볼 수 있겠네?”, “이런 삶의 방식도 괜찮네”라며 동조해 주기는 한다.
 

그 사람은 결국 대기업을 관두지 않아 직업적 변화는 없었지만 부정적이고 우울했던 모습에서 좀 더 활기찬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동생이 오늘 암 진단을 받았는데 모임에 올까 말까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모임에 참석했는데 힘들었던 마음을 잘 달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갔다고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1차원적 접근"
“청년들에게 필요한 커뮤니티 만들어 줘야”


1인 가구 정책을 많이 펼치고 있는 서울시. 황 대표는 서울시가 1인 가구로 힘든 청년들 위주 의 정책이 많다며 조금은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꼭 심리상담, 자조모임(비슷한 질병과 심리사회적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그 해결을 지지해 주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절하기 위한 자발적인 모임) 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임만이 아니라 삶을 재밌고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긍정적인 모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활기가 있고 여유가 있어야 그 사람의 건강한 마인드가 다른 사람에게로 또 전달되고, 이것이 결국 사회를 밝게 만든다는 것이 황 대표의 생각이다.


황 대표는 “사람을 모으려면 취향이나 흥미를 갖고 모아야지 네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모임을 만든다는 것은 1차원적인 접근이 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처럼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세상에 자기 일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모임이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얘기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을 묻자 황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작년에 이태원에서 서울역 인근으로 이사 왔는데 작년 초부터 이어진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좋은 모임을 계속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작년 추석 때 잠깐 모임을 한 번 했던 게 전부니깐.” 모임 자체가 안 되니 어떤 방법을 써도 묘책이 안 나온다고. 온라인 모임도 해봤지만 줌으로 하다 보니 현장감이 없어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란다.
 

“온라인 모임을 하면 갑자기 옷을 벗는 사람도 있고,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통제가 안 되는 거죠.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얼굴을 보면서 그 상황에서 말과 행동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봐요.” 굳이 비생산적인 온라인 모임은 하지 않겠다는 게 황 대표의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태원에 계속 있었으면 비싼 임대료가 감당이 안 됐을 거”라며 “서울역 인근으로 온 건 잘한 거라고 본다”고 태연하게 자신을 위로했다.
 

황 대표는 서울시가 청년들한테 필요한 커뮤니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 돈을 써야 하는 것 말고 실제 트렌드를 좀 읽고 사람들이 나와서 얘기할 수 있는 건덕지를 던져주는 모임들을 서울시에서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어떤 목적을 갖지 말고, 정 목적을 가진다고 하면 취향을 공유시켜주는 정도라고 할까요. 관에서는 꼭 성과를 내기보다는 청년들의 취향을 저격하다 보면 자연스레 공공에서 원하는 사회적 안전망도 만들어질 거라 봐요.” 황 대표는 서울에서 이런 사적 공간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면 지방에서도 이를 보고 분명 트렌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도권에 비해 즐길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에 이런 모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청년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고 이는 곧 청년 인구유출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봐요.” 자신이 사는 서울보다도 지방의 청년들을 더 걱정하는 황 대표의 한 마디다.
 

이기암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황윤호 대표는 사람들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 모임이 가장 생각났다고 한다. 나인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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