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것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4-12 00: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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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센트럴파크는 뉴욕주민들이 가장 애정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여가도 즐기고, 휴식을 취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랜다.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고, 무료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자 각종 대회가 펼쳐지는 스포츠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영화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다방면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이 되는 곳이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폴 오스터는 1989년 쓴 에서 주인공을 통해 이 공원이 주는 자유로움을 다음과 같이 예찬하기도 했다. 


‘길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공원은 나에게 내면적인 삶으로 돌아가 순전히 내면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전념할 기회를 주었다.’ 


아름다운 경관이 사람들의 심성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신념을 가진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는 150여 년 전, 센트럴파크 조성의 필요성에 관해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공원이 생기지 않았다면 뉴욕은 지금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센트럴파크 이전에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공원이 생기기 전 이곳은 돌로 가득 차 있던 습지로 1600여 명의 가난한 사람과 이민자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또 자유로운 흑인들과 독일, 아이리쉬계 이민자들이 살던 ‘세네카 빌리지’라는 마을도 있었다. 당시 맨해튼에는 노예제 폐지로 자유로운 흑인들이 늘어났는데, 이들이 현실적으로 살 수 있는 땅은 맨해튼 외곽의 시골 농지였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흑인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독일계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은 점점 더 커져 3개의 교회와 2개의 학교, 묘지도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남부 맨해튼의 인종차별적인 백인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로 녹지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 사람들에 의해 센트럴파크 공원 조성이 결정되자 뉴욕시는 그들의 땅을 강제 매입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버렸다. 당시 신문에서는 공원 부지에 속한 곳에는 허름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살고 있다고 떠들어 댔지만, 세네카 빌리지는 결코 그런 곳이 아니었다. 2011년 사적조사팀이 발굴한 세네카 빌리지 유적에서는 도자기와 구이용 팬, 담배 파이프, 빗, 칫솔 조각 등이 나왔는데 이들은 중산층 가정에서나 볼법한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곳을 보면 그곳에 매료돼, 그 이전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가 어려운데, 나에게는 센트럴파크가 꼭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누군가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면 동시에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매우 큰 상실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조금은 천천히 변해가지 않을까. 모두가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만 현혹되지 않기를.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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