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파기 공익위원 뒤에 숨지 마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 기사승인 : 2021-07-19 0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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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년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결정됐다. 지난 12일 최저임금위원회는 9차 전원회의를 열어 올해 최저임금인 8720원보다 5.05% 오른 9160원으로 의결했다. 당초 노동계에서는 1만440원을 제시했으며, 경영계는 0.2% 올린 8740원을 요구했다. 언제나 그렇듯 양측 제시안의 큰 격차 때문에 논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중재안(9030원~9300원)을 제시하며 논의를 이어갔지만, 큰 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 원을 지키지 않은 것을 항의하며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4명이 퇴장해버렸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출석한 23명의 위원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 13명, 반대 10명(퇴장 포함)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종 의결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 원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한 채 다음 정부의 과제로 미뤄졌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사정을 토로하고,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노사 양측이 수용해줄 것을 호소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코로나19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뒤에 숨어서 변명을 늘어놓는 태도는 너무도 비겁하고 옹졸한 처사다. 우리 사회는 헌법을 통해서 반드시 보장해야 할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제도 역시 헌법의 기본권조항에서 저임금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 실현 의무가 부여돼 있다. 정부가 공약 파기의 명분으로 내걸고 있는 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의 어려움’이라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더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우선 헤아렸어야 한다. 경제 상황의 어려움을 내걸었으면 1만 원 공약 파기가 아닌 재난극복을 위해 오히려 ‘1만 원 이상 인상’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의는 27명의 위원 중 노사 위원이 각각 9명씩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남은 9명의 공익위원이 중재와 함께 표결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결국 공익위원의 손에 최종판단을 맡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익위원 구성이 핵심이다. 정부 추천 공익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실제 공익적 가치를 존중해 판단하는지 따져볼 문제다. 대다수가 대학교수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경제를 전파하고 있는 학문인 경제와 경영 전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익위원의 존재 의미가 공익적 가치의 중시라고 한다면 오히려 사회권과 노동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적 식견을 갖춘 사람도 포함돼야 마땅하다. 공익위원의 개인적 인품과 성향을 떠나서,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매년 반복되는 파행이 구조적인 한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최저임금을 결정짓는 절차가 노사 양측과 공익위원이라는 구조에서 협의의 과정을 거쳐 의결하다 보니 자칫 최저임금제도를 경제 논리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도는 근본적으로 경제 논리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제도는 우리 헌법 제32조에 명시돼 있는 명백한 기본적 인권이다. 우리 헌법 제32조에서는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③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최저임금제는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최저임금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보장하자는 헌법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저임금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으면, 이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 실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노사 양측의 팽팽한 의견대립에서 공익위원을 9명이나 배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스스로 추산한 근로자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린다. 노동자와 사용자들이 각자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의미다. ‘최저임금 결정’이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개인적 책임인 듯 떠넘기는 무책임한 모습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공익위원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고,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익위원 구성을 변경해서라도 현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더 이상 공익위원을 앞세워 그 뒤에 숨으려 하지 마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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