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이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6-21 00:00:45
  • -
  • +
  • 인쇄
기억과 기록

대면 강의를 하는 것도, 수강생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것도 오랜만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역사 현장을 찾아 과거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던 일상이 강제로 중단되었지요. 곧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를 여러 번, ‘컴퓨터 앞의 일상이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회복된 후 그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깊어지려던 때였습니다. 


‘사람과 문화가 만나는 곳, 울산의 바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울산남부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전체 10강 중 저는 ‘원효와 자장이 건넜던 강과 바다’라는 강의와 ‘바다로 이어지는 길-태화강 100리길’ 탐방에 참여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대면 강의가 진행되었고, 한차례 미루어지기는 했지만 탐방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앞뜰에서 일행을 만났습니다. 대면 강의를 통해 만났지만, 얼굴을 가린 마스크가 한 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었지만, 버스를 타고 나서야 강사인 저를 알아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작하는 오늘의 발걸음이 설렙니다. 약속 시간에 모두 모였습니다. 비 예보가 있어, 살짝 걱정되지만, 길을 나섰습니다. 


울주 천전리각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원효 스님의 흔적을 찾아 반고사를 추적하는 연구팀이 각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을 기쁨과 발견된 이후 각석이 겪었던 사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동심원과 마름모 모양의 암각화, 사부지 갈문왕과 그의 아들 심맥부지(어린 시절의 진흥왕) 그리고 법흥왕비가 남겨놓은 금석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암각화와 금석문을 남긴 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왜 하필이면 이곳이었을까요? 신석기시대부터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찾아왔고, 다양한 내용의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은 울주 천전리각석이 있는 이 장소가 특별한 곳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또다시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림과 글자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졌지만,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 너른 바위가 있는 개울가는 다른 의미의 장소로 이용되었겠지요.


1970년 크리스마스 때 울주 천전리각석은 지역 주민의 결정적인 도움을 얻은 연구자들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었고, 이것은 반구대암각화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적의 발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각석 앞 개울 건너편 바위에서 공룡발자국화석도 발견되었습니다. 원효 유적을 찾으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세계적인 암각화 유적의 발견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개울을 건너 공룡발자국화석을 찾아갑니다. 발자국화석을 찾아 발 크기를 맞춰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각석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거리감은 사물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는 기회를 줍니다. 나를 괴롭히는 번민도 한발 물러서 보면 다르게 느껴질까요?


알고 지내는 문화유산해설사가 선물(안내 책자와 기념 자석)을 전해줍니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대곡천을 빠져나옵니다. 어서 서둘러야겠습니다. 버스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태화강 생태관 앞 다리 밑에서 도시락을 먹고, 선바위와 용암정을 둘러봅니다. 절벽에서 뚝 떨어져나와 서 있는 바위가 신기합니다. 옛사람들에게도 신기해 보였겠지요. 홀로 우뚝 선 모습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태화강 생태관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은 채 태화강국가정원으로 갑니다. 강가의 작은 동산은 자라를 닮아 오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울산부사를 지낸 박취문이 세운 만회정이라는 정자가 오산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새로 지어진 정자가 같은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정자 아래 강가 바위에 관어대라는 글자, 그리고 자라와 학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라가 왜 거북을 닮았는지를 두고 짧은 토론을 한 뒤 태화루로 향합니다. 태화루에서 일정을 마칠 예정입니다.


누구는 대나무 숲속 길로, 누군가는 강가 산책로로, 또 누군가는 광장 안으로 길을 잡습니다. 목적지가 있으니, 어느 길을 선택하든 괜찮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탐방 일정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