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자유롭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1-06-21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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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의 개념이나 내용이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은 억압과 통제보다는 자유를 추구한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책 속의 조르바가 사랑에 취하고 포도주에 취해 살면서 자유를 갈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한 번뿐인 인생, 한 가지에 빠져서 마음껏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가 한때 탄광개발사업을 하면서 실제로 만났던 실존 인물 조르바를 각색해 만든 소설이다. 소설을 위해 다소 과장된 면이 있겠으나 책 속의 주인공 조르바는 늘 술을 입에 달고 다니며 마시고 여자를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을 마음껏 발산한다. 이 소설에서 ‘여자’와 ‘술’은 쾌락과 역동적인 삶을 상징하며 이 소설의 소재를 이루고 있다. 책에는 여자에 대한 묘사가 불편할 정도로 너무 자세히 그려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性的) 대상화, 동물의 비유 등 페미니즘과 젠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을 읽는 불편함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을 비롯한 예술작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이러한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탈속적이고 무도덕적(?)인 조르바가 관계 맺는 여자들은 과부들이다. 자유인 조르바에게도 지켜야 하는 금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호색적인 기질이 흥미롭지만 조르바가 대단한 점은 그가 보스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임에도 노동자 이상으로 탄광에서 미친 듯이 일을 한다는 점이다. 탄광 일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공중 삭도 건설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고 소설에서 기본 토대를 형성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면서생인 ‘나(보스)’와 평생 책을 손에 잡은 적이 없어도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주어진 일을 저돌적으로 하는 ‘조르바’, 이 두 사람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보스는 일은 내팽개치고 늘 철학적 고뇌에 빠지거나 불교의 붓다와 관련된 희곡을 쓰기에 바쁘다. 조르바가 경멸하는 것은 이성, 지식, 책처럼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이다. 그는 신(神)을 철저히 부정하고 조롱한다. 자유롭게 지금의 삶을 즐기는 데 신마저도 걸림돌로 생각한다. 그는 현재의 삶을 즐기고 사랑했으며 과거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삶을 철저히 살았다. 반대로 보스는 차분하고 사려 깊고 지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어서 조르바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35살의 보스는 65살의 아버지뻘 되는 조르바와의 만남에서 그의 기이한 행동에 반신반의하다가 점점 조르바에 매료되면서 자신이 가져왔던 관념적이고 지식에 매몰된 삶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때로는 스승이 될 수도 있다. 보스의 삶에 균열을 가져오고 삶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바로 조르바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제, 이성과 감정, 정신과 육체, 욕망의 절제와 발산, 성(聖)과 속(俗) 등 평소 고민해왔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조르바는 현실을 중시하고 감정대로 행동했으며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는 캐릭터다. 오백 페이지나 되는 길고도 긴 소설을 덮으면서 여전히 나에게는 조르바가 추구했던 삶이 시원시원하고 멋있기도 하지만 완전히 공감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두 가지 대립되는 가치에 있어서 한쪽을 선택(강요)한다면 우리의 삶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조화로운 삶이다. 이성과 감정, 욕망, 성과 속이 과연 조화될 수 있을까. 조르바는 후자를 추구했지만 양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영속적이고 윤택하게 된다. 정욕에 이끌릴 때 그것은 또 다른 갈망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삶은 욕망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격언이 더 와닿는다. 그렇지만 우리의 억압된 감정과 욕망을 현실에서 거침없이 드러내는 조르바의 삶은 대리만족을 얻거나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우리의 정형화되고 안정 지향적인 삶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크레타 섬에서 벌어지는 보스와 조르바의 철학적 대화는 다소 어렵지만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조르바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인가? 허무주의자인가? 낙천주의자인가? 리얼리스트인가? 여전히 나에게는 아직도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로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면서 놓치고 있는 것이 지금(now), 여기(here)를 등한시하고 음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 조르바가 사랑했던 마담 오르탕스의 죽음을 치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새로운 길에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합니다. 나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미래의 전망을 찾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잠을 자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잘 자라고.’ ‘조르바,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여자를 안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그 여자 잘 안아줘. 그 나머지는 잊어버려.’ 이 세상에는 나 자신과 그 여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그리스인 조르바, 연암서가, 이종인역, 433쪽) 현재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러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먼저 읽어 보고 조르바처럼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 멋들어지게 춤사위를 일으켜보는 용기를 내어보자.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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