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처럼 결단하라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 기사승인 : 2021-12-06 00: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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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침체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차기 대선주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현재의 남북관계를 바꾸려는 결단이다. 결단은 어떻게 남북관계를 바꿀 것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 바로 전 단계다. 결단을 내리기 위해 대선주자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미래비전에 대한 신념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정 최고권자가 되었을 때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임기 초 바로 실행하는 것이 정책의 추동력을 얻는 데 가장 효율적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저런 형식으로 대두될 장애물과 장벽에 애초의 신념과 결단이 약해질 수 있다. 결단은 용기를 요구한다. 진정한 용기는 처절한 신념에 바탕한다. 강한 신념만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1969년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서독은 대동독 강압 정책을 추진했다. 핵심은 동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동독은 민주정권이 아니기 때문에 서독만이 독일을 대표할 수 있다고 했다. 동독을 인정하는 국가들과도 교류하지 않았다. 이것이 할슈타인 선언(Hallstein Doctrine)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과 폴란드의 경계로 획정된 오데르-나이세 국경도 인정하지 않았다. 통일은 동독 지역의 자유선거를 통한 사실상의 흡수 합병, ‘힘의 우위’을 통해 소련이 동독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것에 바탕을 뒀다. 빌리 브란트는 정책 변화를 결단한다. 이른바 ‘새로운 동방정책’의 추진이 그것이다. 브란트의 결단을 가져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기존의 봉쇄정책으로는 독일통일을 진전시키기는커녕, 분단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생각이었다. 대동독 압박정책은 현상의 고착화만 초래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접근을 통한 변화’를 통해 동독을 변화시킬 결단을 했다. ‘국가적 통일’ 대신에 민족적 통일, 다시 말해 두 독일국가를 하나의 영토적 국가로 재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독일민족에의 소속감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 바로 그것이다. 


브란트 결단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신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첫째, 통일은 단 한 번의 조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조치들과 단계들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독의 변화는 새로운 정책의 전제가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 기대하는 결과가 돼야 한다는 데 있었다. 둘째, 상대방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대동독 정책의 목표를 동독 공산주의의 제거가 아니라 변화에 뒀기 때문이었다. 바꾸어 말해 외부적 강제를 통해 동독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 지배 체제가 불안정화하면, 체제의 경직화만 초래할 뿐, 체제 내부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동독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야만 동독의 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믿었다. 셋째, ‘접근을 통한 변화’는 서독의 우월성이 동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동독이 불안정하면, 동독 정권의 방어적 조치 때문에 동독 체제가 경직화되고, 동서독 교류·협력은 중단될 것이지만, 동독이 내부적으로 안정되면, 서독과의 협력이 증대될 수 있으며, 이것이 내부 개혁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동독이 안정적이어야 서독의 우월성이 동독 내부에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브란트는 동독을 국가로서 사실상 인정하고, 대동독 고립화 정책을 포기하며, 동독을 서독과 특별한 관계의 동등한 국가로 승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브란트의 대동독 정책은 동서독 기본조약을 포함, 수많은 협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정책적 전환을 둘러싸고 격렬한 정치적 대립이 일어났다. 야당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야당은 정부·여당이 안보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반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동독의 의도, 합의 이행 및 변화 여부를 너무 안이하고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동독 협상이 너무 조급하며,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며, 결과적으로는 동서독의 통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동방정책에 대한 반대는 결국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 제출로 이어진다. 그러나 불신임 결의안은 연방의회(1972.4.27) 표결에서 절대다수인 249표에서 2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동서독 기본조약(1972.11)에 대해서도 바이에른 주정부가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1973년 7월)했다. 기본조약이 서독의 기본법과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었다. 동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독일 재통일과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이 서독의 기본법과 합치한다고 판시한다. 독일 내 비록 두 국가가 존재하지만, 단 한 개의 독일 국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호 외국이 아니며, 두 국가 간의 경계는 연방주 간의 경계와 같다고 했다. 이를 발판으로 브란트는 자신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의 선거를 치르는 결단을 하게 된다. 국회를 해산하고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된 10일 후인 1972년 11월에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그 결과는 브란트의 압승이었다. 브란트의 결단에 의한 신동방정책은 이후 정권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일관성 있게 추진됐다. 그 일관성이 훗날 독일통일을 가져오게 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대선주자는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브란트와 같은 결단을 내릴 준비가 돼 있는가? 수많은 반대와 비판을 돌파할 결의를 갖고 있는가 말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포함,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교류협력을 위한 방안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신념, 장애물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다. 이 힘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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