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분한 감투, 과분한 수확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12-07 0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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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지역에 있는 복지관과 연이 닿아 케이크를 후원한 지 여러 해가 흘렀다. 어느 날 관으로 초대하는 자리에서 부족한 내게 감투를 내밀었다. 관내 주간보호센터 운영에 관여하는 일이었다. 본래 거절을 잘 못 하는 성미라 그만 덥석 받아 안았다. 다소 의례적이긴 했지만 내겐 과분한 감투였다. 받고 보니 여전히 내겐 어색하다.


그간 자리는 맡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대면이 어려웠던 시기인지라 대상자를 만나거나 관내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앞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마땅한지 늘 자문할 수밖에 없다.


올 연초에 주간보호센터 담당 복지사로부터 강의를 부탁받았다. 대상자들과 월 1회 베이킹 체험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본업이라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서 제안을 수락했다. 첫 강의에 앞서 대상자 면면을 보며 체험이 가능할지 우선 의문이 들었다. 체험 대상은 주간보호센터의 장애인이었다. 장애 정도로 보면 ‘중증 장애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보호자 없이 활동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내 역량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간 작은 후원이 전부였을 뿐 대상자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없었기에 내가 맡은 역할과 소임을 해소할 기회라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강의하는 첫날부터 우리는 대면할 수 없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코로나의 확장이 멈추지 않았다. 정부의 시책 역시 엄격했다. 첫 체험은 비대면으로 화면을 통해 만났다. 난 현장에서, 그들은 시설에서. 직접 그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었기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 날 난 멀리서 수월하게 강의한 셈이었다. 


그 후 대상자들과 첫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난 뒤 난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에게 다가가고, 인사하고, 손잡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보다 다소 나은 편이긴 했지만 학교 특수반 아이들을 여러 번 경험했던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예상했던 수강자들이 아니었다. 그냥 ‘강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했지만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교육이 끝나면 베이킹이나 요리에 대한 흥미와 다음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려면 강사로서 난 대상자들의 얼굴에서 만족한 표정을 이끌어내야 했다. 매번 강의할 때면 상대의 눈빛을 살피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그런데 대상자들의 표정을 도무지 읽어낼 수 없었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면 그 어떤 메시지도 내게 주지 않았다. 눈을 비비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피드백이 전혀 없어 내 속도대로 잘 따라오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내 강의가 대상자들을 향하는지 보호자나 보조자들을 향하는지 나조차 헷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없었기에 성취감이나 자기효능감을 갖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행동이나 활동을 보조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대상자들을 향한 나의 이해 부족이었다. 혼자만의 열연으로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내 머릿속에 뭔가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흥미나 호기심조차도 갖기 어려운 그들을 보면서 무얼 가르쳐보자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은 빵과자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 정신적 활동과 신체적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철저하게 보조자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맛과 향에 대한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여러 재료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맛과 향은 우리에게 먹는 일이 즐거운 일임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표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몬의 신맛은 얼굴의 표정을 바꾸지 않는가. 그동안 그들과 함께하면서 달콤한 빵과자를 통해 미세하지만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 순간 무엇보다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준 선생님들의 열의가 그들의 표정을 변화시켰다. 이번 체험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강의자인 내게도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나의 큰 수확이었다.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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