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조강래, 구승은 인턴 / 기사승인 : 2021-12-08 0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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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도시를 위한 상상

상상 좌담
▲ 왼쪽부터 길기판 싱어송라이터,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 김대성 웨일웨이브협동조합 대표, 노진경 땡땡마을 새활용 마을교사 ⓒ조강래 인턴기자

 

다양성이 담긴 도시가 위기에 강하다

책 읽는 어른들 모습 자연스러운 도시

김대성 웨일웨이브협동조합 대표=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지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공유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지역에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문화도시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생각을 해보니 도시가 지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들을 해왔더라.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도시를 꿈꾸길래 마음을 다해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래서 오늘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각자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풀어주길 바란다.


노진경 땡땡마을 새활용 마을교사=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새활용 수업과 청소년자치배움터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상북면에서 청년들과 함께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작은 마을이라는 단위마다 다양성이 담길 수 있고, 자급자족이 된다면, 그런 마을이 모여서 도시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건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16년에 현대중공업이 위기였을 때 동구가 난리가 나지 않았나. 그 이유는 동구가 현대중공업, 조선소로만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도 자동차 산업에만 의존하다가 자동차 산업이 빠져나가자 한때 황폐화됐다. 도시가 위기가 올 때마다 휘청이지 않으려면 다양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시민인문학교 인문숲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모토는 ‘시민이 인문의 주체다’이다. 기존에는 학자나 권위자들이 인문을 헤게모니로 삼고 시민들을 인문의 대상으로만 대해왔다.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인문교육을 보면, 유명한 강사를 데려다 놓고 강의하고 끝나더라. 대부분이 그랬다. 과연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빠져나왔을 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권위자, 교수, 이런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문의 헤게모니를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 시민들 각자가 읽고 만나서 토론하고 치열하게 무언가를 생산하는 작업을 한다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 그 운동을 8년 정도 하고 있다. 그런데 성과물이 어마어마하다. 일반 시민들이 모여서 잘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철학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다 보니 오히려 더 풍요롭게 읽어지더라. 함께 책을 쓰기도 하고, 유튜브에 인문학 콘텐츠를 올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울산을 잇다’라는 제목으로 울산의 인문예술문화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과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인문이 시민 각자의 삶에, 각자의 몸 안에 들어와 삶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자 입으로 자기가 읽은 것들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철저하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권위자의 교육 시스템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토론과 발제와 여러 가지 생산물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다. 골목골목마다 책 읽고 토론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도시가 되면 좋겠다.

걷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

길기판 싱어송라이터=걷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울산은 차가 없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분명 좋은 곳이 많은데, 걷는 사람이 부족하다. 사람을 물로 비유하자면, 울산 사람들은 급류랄까. 다른 도시에서 예술활동을 하면 물이 고이는 곳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걷고 쉬고 또 뭔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서로 대화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많구나,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울산은 그런 게 부족하다. 도시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예술활동, 시민활동이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 빨리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시청 광장은 원래 사람들이 많이 머무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울산시청 광장에는 시위하는 사람들 말고는 볼 수가 없다. 시위한다고 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든 공감을 느끼든 일단 천천히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공간이다. 광장은 다양한 역할을 해주는데, 울산은 그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 부족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추상적이긴 하지만 걷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김대성=그런 면에서 태화강국가정원이 참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멈춰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멈춰서 가만히 있다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분주해 보이더라. 빠르게 걷거나 운동을 하거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천천히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누리는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작은 것을 보고 멈춰 설 수 있는, 감동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미선=지금 전 세계적으로 부는 바람 중에 하나가 ‘어싱(earthing)’이 있다. 맨발로 땅을 밟고 걷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땅을 맨발로 밟을 기회가 없다. 도로는 다 아스팔트로 덮여있고, 신발엔 고무가 있지 않나. 그런데 과학적으로 사람이 스트레스받고 질병이 생길 때 땅과 접촉하면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 나도 관심을 갖고 해보려고 했는데, 바다와 산 말고는 다 무언가로 덮여있더라. 아이들은 흙으로 덮인 땅을 보면 아스팔트는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원래 아스팔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 지역에서 어싱 운동이 활발해지길 바란다. 땅이 더러운 게 아닌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기만 한다면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노진경= 요즘 아이들이 흙을 만날 기회가 적다. 소호마을에서 농사 체험, 숲 체험을 함께할 때 아이들이 흙을 더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옷이나 신발에 흙이 묻는 것이 더럽다고 느끼는 것에 놀랐다. 아이들에게 먹거리가 어디서 오는지, 나무는 어디서 자라는지,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흙이 더럽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다. 도시에서는 때때로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도시인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 되길

김대성=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가 몸으로 생태계로 인식하고 감각할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도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상호 연결돼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몸을 예로 들어 어딘가 가려우면 팔이 긁어주는 것처럼 우리 도시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그걸 같이 느끼고 반응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각자도생하며 살아가는 것에 너무 집중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행정에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울산에 은퇴하는 분들이 많지 않나. 퇴직 이후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불안감도 많고 고민도 클 텐데, 그 세대가 아닌 사람 중에서 함께 느끼고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우리 도시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도시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됐다. 같이 고민해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가 아닐까. 당사자인 내 문제가 아니면 무반응한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구분하고 판단하고 차별하는 문화에 익숙해져서 그게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우리 도시의 문제가 아닐까. 


바른 관계에서부터 바른 문화가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 봐야 하는데, 행정에서는 각자 칸막이를 쳐두고 구분 지어 일하고, 도시를 몸으로 보지 못하고 도시를 경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부분에서 행정도 시민과 같이 도시를 몸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아예 새롭게 틀을 짜면 참 좋겠다. 누군가 힘들 때 기꺼이 힘들어하고, 기뻐하면 기꺼이 기뻐하는,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되길 바란다.


최미선=꼬리를 흔들어서 머리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움직여서 행정을 움직여야 한다. 머리만 바꾼다고 시민들에게 공동체 문화에 대한 혜택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진경=차라리 무관심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최근에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 아빠와 에코 세대 아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다. 아빠는 아들에게 우리는 신혼 때 단칸방에서 시작했고 청년은 누구나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하며, 경제를 발전시킨 우리 세대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고, 아들은 그런 아빠를 꼰대라고 비난하더라.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무기력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 고통을 마주하면서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면 상대가 안 보이는 것 같다. 서로 고통을 못 보는 것은 도시의 사람들이 고통스럽다는 반증이 아닐까.


최미선=<비폭력 대화>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방법대로 대화하면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 타인을 받아들이면서 공존해가는 대화법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아서 경쟁언어에, 비난하는 언어에 익숙하다. 칭찬하는 언어에는 익숙하지 않다.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언어 교육을 하는 곳이 생겨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상대방의 언어를 나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싸움으로 번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다.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전쟁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진경=마을 안에 있는 어른들을 보면 싸울 때는 끝까지 싸우더라. 끝까지 싸운다는 게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신기한 것은 그렇게 싸우고 또 본다는 것이다. 서로가 대를 이어서 이 동네를 살았고 떠나가지 않을 걸 알고 있다. 내가 불편한 지점들을 좋은 언어로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마음을 치열하게 끝까지 표현하더라. 그 모습이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소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동네 사는 동생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기분이 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서운한 이유를 꺼내기 시작하더라. 나도 서운한 이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 이런 얘기를 계속하자, 그래야 오래 볼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틀림과 다름을 구분할 줄 알고 대화하면 마음의 갈등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소통하는 도시가 좋은 도시다

김대성=빠르게 바쁘게 살아가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 도시에 인문정신이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도시에는 어떤 인문적인 것들이 필요할까?


노진경=내면적인 게 물리적인 걸 바꾸기도 하지만, 물리적인 게 내면적인 걸 바꾸기도 한다. 울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불편하고 걷기가 불편하다. 서울만 해도 다음 역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곳들이 많은데, 울산은 대로를 껴야만 가능할 때가 많다. 이러한 물리적인 환경이 우리의 속도를 올리게 한다. 일상의 좋은 마주침의 공간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울산의 길들은 빠르게 이동하는 길, 편리한 길들 위주다. 물리적인 조건이 개선되면 내면적인 게 바뀌지 않을까.


최미선=동네 곳곳에서 작은 모임들이 계속 일어나야 한다. 골목에 손님이 없을 법한 커피숍에서 모인다든지 말이다. 울산은 시민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달리 보면 시민문화에 대한 욕구도 그만큼 많다.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우리 도시에 많다.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결집해서 동네 곳곳에서 모임을 해나간다면 울산은 희망적이지 않을까.


김대성=관계나 삶의 문제에 집중하는 사업을 도시가 적극적으로 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소나 풍력 같은 에너지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도시는 산업과 일자리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 관계나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좋은 소통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잘 소통하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울산은 문화조차도 사업적으로 접근하지 않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골목에서 잠시 멈춰 만날 수 있는 방식이나 제도를 생각한다면 우리 도시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최미선=동네마다 책 읽는 것도 좋고, 작은 콘서트도 일어나면 좋겠다. 커피숍 안에 작은 공간 하나만 있어도 그런 걸 할 수 있지 않나. 사람들은 연결됐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그 행복함에 젖어 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언저리에 머물게 된다. 동네에서 작은 콘서트, 작은 음악회가 일어날 수 있도록 울산시가 그런 부분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

편리함보다 행복에 집중하는 도시

노진경=우리 도시가 편리함보다 행복에 집중하면 좋겠다. 편리함에 집중하면 차도 빨리 가야 하고, 화단도 있으면 안 된다. 관리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편리하고자 하는 근본의 목적은 행복이지 않나. 그 근본적인 목적에 집중하면 좋겠다.


길기판=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우리가 어떻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한 예능 프로그램을 봤는데, 고슴도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걸 보고 잔인하다고 얘기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잔인함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상이 느끼는 고통에 무감한 게 잔인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서 쉽게 잔인한 행동을 하지만, 크고 나서는 누군가 다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고통과 잔인함을 알게 된다.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서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감의 기회가 많은 도시가 된다면 좋은 도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공감의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말하면 너무 추상적이기도 한데, 그 앞에 구체적인 명사들이 자유롭게 붙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하나 붙여본다면, 우리 도시가 지역예술인에 대한 공감이 많은 도시가 되면 좋겠다.


최미션=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대폰 같은 중간 매개체를 빼고 직접 만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작은 공동체들,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만남이 우리 도시에서 자주 일어나길 바란다.


정리=조강래, 구승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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