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울산-울산365경] 지루하지만 따뜻하다-성혜마을

이민정 시민 / 기사승인 : 2022-04-20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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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온 지 4년째 되던 2017년 여름 한 봉사단체를 소개받았다. 대표는 10여 년간 단체를 이끌면서 자부심이 컸다. 사비도 많이 들였다고 했다. 당시 울산에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던 때라 영화인들이 아닌 이들에 대한 낯섦이 있었다. 연말에 매년 해오던 행사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요청해왔다. 자원봉사였다. 12월 행사니 7월이면 일정이 빠듯했다. 유치한 영화인 자부심으로 경력에 넣진 않지만, 20대부터 크고 작은 행사를 주도하고 작업한 경험이 제법 있어 이런 작은 행사는 쉽고 만만하다. 돈이 없으면 짬과 품을 팔면 된다.


회원들은 처음부터 내게 적대적이었다. 직전년도 모든 행사를 영화인이라는 누군가가 맡았는데 돈만 ‘뜯어가고’ 한 일이 없어 단체에 누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대표가 물러날 예정이었던 자리를 내게 넘기겠다고 공언하는 바람에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던 무리에게 참 모욕적인 일도 많이 당했다. 회유 아니면 겁박이었다. 굴러들어온 돌이라 했다. 출퇴근하는 것이 귀찮고 소모적이라 20년 전부터 해오던 선생질도 전임에서 겸임으로 바뀐 지가 언젠데, 주기적으로 봉사하는 단체의 대표라니. 내 삶에 어불성설이다. 일단 약속한 일이니 마무리는 지었다. 사비를 써가며 엔터테인먼트 전공 제자들을 셋 불러 보조를 시켰다만, 4시간 동안 그 넓은 곳을 혼자 커버했던 날 발바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이때 울산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만들어졌다. 분노가 넘쳐 남양주 캠퍼스로 학과 이전 때까지 울산 사람들과는 두 번 다시 교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때 첫 회의로 모였던 장소가 성혜마을이다. 대표의 공장이 이곳에 있었다. 2년 뒤 개인적인 일로 찾았을 때 눈에 익었나 싶더니 그 공장을 확인했다. 상호는 그대로였지만 폐업 상태였다. 2021년 늦가을, 성혜마을과 울산공항 이전 관련 정책 발표를 위해 자료검색을 하다 포털 지도를 통해 내가 두 번 방문했던 마을 이름이 성혜마을임을 알았다. 북구의 백운찬 시의원이 발의한 성혜마을 개선 내용은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공약이기도 했다.


1953년 이승만이 대통령을 연임하던 시기, 정부의 한센인 격리정책에 따라 소록도에 이어 울산공항이 있던 자리에 약 200명의 한센인이 정착했다. 1970년 박정희가 대통령을 연임하던 때 울산공항이 개항하면서 이들은 지금의 성혜마을로 강제 이주했다. 한때 마을의 심각한 환경오염과 열악한 정주(定住) 여건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대두됐다. 한센인들은 축산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축사와 주거 및 생활공간이 혼재되면서 열악한 여건에서 생활했다. 1980년대 전두환의 대통령 연임 시절 돼지와 닭을 키우며 살아가던 한센인들은 축산업의 침체와 함께 울산공항의 소음으로 양돈‧양계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이 축사들을 개조해 공장으로 임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현재까지 약 200여 개의 무허가 공장이 난립하고 노후한 주택은 화재 등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현재 40여 명의 한센인 1세가 거주 중이고, 이들의 평균연령은 79세다.

 

▲ 중구의 둘레길을 소개하는 종합안내도. 성혜마을로 진입하는 시례교의 입구에 서 있는 이 안내도에는 성혜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이민정 시민기자

 

▲ 위풍당당 얼룩 고양이. 컨테이너 아래에 강아지 리드줄, 용도를 알 수 없이 뒤집혀 있는 커다란 항아리, 물그릇과 사료 그릇, 고양이가 좋아하는 종이상자, 쓰레기통으로 사용될 플라스틱 세제통, 그리고 내부에 있을 사람의 신발 두 켤레의 배치가 흥미롭다. ©이민정 시민기자

 

▲ 방금 전 이 검은 고양이는 오른쪽 뒷발로 오른쪽 귀 뒤를 긁다가 망원렌즈를 들이대자 제법 빠르게 이동하다가 카메라를 봤다. 숨을 참고 혀를 차며 고양이를 불렀던 보람이 있다. ©이민정 시민기자

 

▲ 이런 풍경, 아파트촌에서 보기 힘들다. 빨랫줄에 집게를 차고 널려 있는 빨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무엇인지 모르게 향수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빨래 색상 배치도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다. ©이민정 시민기자

 

▲ 반백 년을 살며 이런 골목을 처음 본 것 같다. 수평을 잡은 사진도 있지만 어쩐지 기우뚱하게 찍고 싶어 한 장 더 찍었다. 초점은 왼쪽 앞의 시멘트와 돌과 세월이 뒤엉킨 덩어리에 맞췄다. ©이민정 시민기자

 

▲ 성혜마을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고 가장 큰 건물인 성혜교회 담벼락에서 내려다본 골목. 저 멀리 북구 장현동의 아파트 단지가 산 높이로 스카이라인을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다. ©이민정 시민기자

 

▲ 성혜교회에서 내려다본 풍경. 비슷비슷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는 공장이기도 하고 주택이기도 하다. ©이민정 시민기자

 

▲ 성혜교회에서 내려가는 길에 확실히 사람이 거주하는 곳으로 보이는 집이 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 사는 집은 눈으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민정 시민기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짓는 동안 천곡동 낡은 아파트를 빌려 산 적이 있다. 학교에 출퇴근하거나 남구로 오가면서 낡은 합판에 대충 써놓은 ‘딸기’ 글씨를 여러 번 봤다. 체험학습 같은 것도 하나 보다, 했던 기억도 난다. 코로나 시국으로 체험은 불가능했겠지만, 엄청난 면적을 차지한 커다란 비닐하우스 수십 동에는 철이라서 그런지 분주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에서 연쇄살인마는 비루한 여성을 찢어진 비닐하우스로 은유한다. 제철이라 깔끔하지만 언젠가 봤던 이 딸기 비닐하우스들이 흉했던 때도 있었다. 잠시 <버닝>에서 살해당하는 해미(전종서 분)가 검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반라로 춤추는 몽환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중구 장현동에서 동천강 샛강 지류를 가로지르는 시례교부터 북구다. 시례교를 건너면 왼쪽에 신축건물인 성혜마을회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성혜회관이 있다. 일요일 이른 오전이라 문이 닫혀 있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지만 성혜마을회관은 경로당이고, 성혜회관은 아파트로 치면 관리사무소쯤 되는 것 같다. 시례교 북단에서 마을로 진입하지 않고 바로 왼쪽으로 난 길이 안시례길, 오른쪽 길은 성혜1길이다. 안시례길 쪽은 조립식 패널로 올린 비슷비슷하게 생긴 공장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성혜1길 쪽은 주택과 공장이 뒤섞인 채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왼쪽 공장들은 그나마 건축법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이지만 오른쪽은 덕지덕지 바르고 붙여가며 변형하고 바꿔온 듯했다.


성혜마을회관과 성혜회관 사이로 난 길을 70미터쯤 걸어가면 네거리가 나온다. 가로로 지르는 길이 성혜3길로, 양쪽 모두 공장이 난립해 있다. 왼쪽 길모퉁이에 오래된 식당이 있다. 오르막길로 직진해서 죽 올라가면 여지없이 커다란 교회가 하나 있고, 언덕마루쯤에 또 오래된 식당이 둘 있다. 하나는 익스테리어에 손을 좀 본 것 같지만 다른 하나는 낡은 채 그대로다. 식당들은 아마 공장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반집쯤 될 테다. 촬영 나간 날이 일요일 오전이었는데, 집집마다 목사의 설교 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이어졌다. 방음이 안 되는 것인지 소리를 크게 틀어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음이 대단했다. 코로나 덕분에 전 국민 첨단기계 문화복지 실현이다. 이 가난한 동네에서 하늘로 치솟은 비싸 보이는 교회는 위풍당당했다.

 

▲ 성혜마을 입구의 시례교와 성혜마을회관. ©성경식

 

▲ 성혜마을 공장 골목. ©성경식

 

▲ 성혜마을 공장. ©성경식

 

▲ 성혜마을 언덕마루에서 내려다본 성혜마을 전경과 북구 장현동 일대 및 울산공항. ©성경식

사이사이 난 길들은 좁은 편인데 높낮이가 있어 카메라 앵글 잡기가 좋다. 비슷비슷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서로 달라 스토리텔링거리도 있다. 낡았지만 부지런한 손길들이 느껴진다. 제멋대로인 시멘트 덩어리들 사이로 더러운 물이 흐르지만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언덕마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삐뚤빼뚤한 슬레이트 하늘색 지붕들이 가득하다. 낡은 게시판에는 공장 임대와 매매가 인쇄된 낡은 A4 용지가 잔뜩 붙어 있다. 사람이 떠나 잡초가 무성하고, 닭과 돼지를 키웠을 집, 아니 시멘트 덩어리들은 녹슬어 곧 가루가 될 것 같은 철망과 함께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방금 사람이 지나갔을 것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의미는 서글픈데 감상은 따뜻하다. 굉장히 희한한 동네다.


꽤나 더웠던 날 볕에 말린다고 빨래를 널어놓은 모양새도 경험한 적 없는 괜한 향수를 일으켰다.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널려 있는 빨래도 붉은색에서 베이지색으로 나란히 그러데이션을 만들었다.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들은 시건방져 보일 만큼 자유로웠다. 높은 공장 건물에 가려져 볕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 보이는 낡은 집도 깔끔했다. 참으로 희한한 감성을 주는 곳이다. 운치라고 하기엔 괜한 죄책감이 들고, 비루함이라 하기엔 참으로 따뜻했다. 다만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와 묵직해 보이는 커다란 교회만 이 마을과 불균형을 이뤘다.


시례교 북단에 있는 회관 바로 옆에는 이 마을의 유일한 시장인 작은 가게가 하나 있다. 구멍가게라고 하기엔 조금 더 크고, 마트라고 하기엔 턱도 없다. 가게는 스테인리스 자바라 문으로 닫혀 있었고, 그 앞에 낡은 자판기와 현금인출기가 있다. 한 사람이 드나들 만한 통로 양옆으로 술 상자와 담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교회가 주민들의 회당(會堂)이라면 이곳은 주민들보다 노동자들의 광장쯤 되는 것 같다. 충무로의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몰려 내려가기 전까진 플라타너스 나무가 울창했던 좁은 골목의 구멍가게 앞에서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에 감독님과 연출부들이 비좁게 옹기종기 둘러앉아 새우깡 하나 까놓고 맥주나 소주를 마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참 운치 있었다. 종일 영화만 얘기했고, 돈을 못 벌어도 작품이 엎어지고 지연돼도 참 행복했다. 저 가게를 보니 그때의 아스라함이 소환됐다.

 

▲ 벽보 게시판은 낡고 찢어진 공장 임대 알림으로 가득 차 있다. ©손방수

 

▲ 공장 사이의 주택. ©손방수

 

▲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성혜마을 표석. ©손방수

 

▲ 낡은 주택에 새로 설치된 문이 인상 깊다. 문은 출하됐을 당시 붙어 있던 비닐이 오래된 시간을 증명하며 낡은 채로 붙어 있다. ©손방수

 

▲ 마을의 유일한 ‘점방’과 사무실이 있다. 점방 앞에는 빈 술 상자와 담배 상자가 잔뜩 있고, 자판기와 현금인출기는 낡았다. 아파트관리사무소와 같은 이곳의 정체성이 궁금하다. ©손방수

울산 정치권과 지방정부는 그린벨트를 풀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알못’인 나는 개발제한을 유지하는 다른 방법이 있길 바란다. 울산영상위원회 설립을 고대하며 나라도 먼저 로케이션 촬영지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현 상태로 유지해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장소들이 많았다. 구석구석 다니고 앵글을 잡으면서 울산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이 작업의 도정에서 울산 발전과 마케팅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생겼다. 앵글마다 걸리는 높은 새 아파트들은 이제 그만 생겼으면 했다. 그린벨트가 풀리면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찰 것이다. 울산공항 이전과 부지에 대한 논의가 들어설 아파트의 토건세력과 투기꾼들을 위한 선제 고민이 아니길 희망한다.


이민정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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