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21-08-30 00: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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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을 읽다가 ‘아차’ 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는데, 화자 또는 등장인물의 성별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마다 편협한 내 세계를 탓하곤 한다. 인칭대명사 ‘그/그녀’를 구분해 쓰지 않는 최근의 흐름에 따라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읽어 나가다가 몇 가지 정보들에 의해 등장인물의 성별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그제서야 내 의식이 인물(심지어 의인화된 동·식물, 외계인이더라도)을 성별로 구분하는 고집스러움에 붙들려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글의 장르 또는 주제에 따라서는 특정 성별을 기본값으로 두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SF 소설의 경우는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인물을 남성 기본값으로 두고 있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과학자, 우주인 등의 인물을 성급히 남자로 해석했음은 물론, ‘노인’ 인물에 대해서도 늙은 남자를 떠올리던 내 편협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직업’이야말로 성별 고정관념에 고집스레 붙들려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진로 교육을 통해 여자/남자 직업은 존재하지 않음을, 여초/남초 직업군에서 뛰어난 여자/남자 직업인을 예시로 보여주지만 진로희망란에 남학생은 축구선수, 여학생은 미용사 또는 간호사가 꾸준히 등장하는 걸 보라. (진로희망은 주변 환경, 시대에 따라 달라져 최근에는 여/남학생 통틀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선망 직업이긴 하다만) 특정 직업에 특정 성별이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은 아무래도 “재현된 세계의 편협함”이 큰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편협함을 깨부술 수 있는 미디어의 다양한 재현 시도들이 등장하는데 분명 몇 년 후, 몇십 년 후 세계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기대한다. 도쿄 올림픽 후 재조명되는 여자 배구 덕분에 20~30대 여성들이 배구 동호회를 찾아 나서고, <골 때리는 그녀들> 덕분에 축구가 남성 고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살면서 검사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다행인지 몰라도) 단 한 번도 없다. 대체로 영화나 드라마에 재현된 ‘검사’ 또는 신문과 뉴스에 등장하는 ‘검사’만이 내 검사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을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검사는 “권력의지에 충만한, 정의로움은 옵션인 중년 남성”이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정명원 지음, 부제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이라는 표지의 정보를 통해 나는 또 한 번 남성 화자를 떠올렸음을 먼저 밝혀 둔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은 이렇게 구성돼 있는 세계에 실제 검사의 일상을 담아냄으로써 검사라는 미지의 영역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다. 


캐비닛에 쌓인 사건 기록을 하나씩 처리하며 매일매일 공판을 준비하는 법률노동자로서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민원인의 민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공무원의 모습이, 재판 중에 증인/피고인의 심문을 듣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피고인의 ‘낭만’적인 호소에 잠시 마음이 동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이, 교실의 도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들의 소지품을 뒤진 자녀에게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꾸짖는 양육자의 모습들도 모두 검사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곽주의자’ 검사의 담담한 일상에도 동등하게 성차별이 적용된다. 재판 중에 “딥 블루 레이디” 소리를 들은 검사 에피소드에서는 한국에서 성별/나이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여실히 느꼈다. 그리고 증거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검사들에게도 사생활에 관한 뜬소문은 젊은 여성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단한” 남성들의 권력 투쟁의 장으로만 알았던 검사 세계에 실제는 비(比)서울, 비(非)남성, 비(非)중심 검사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면 여기에도 “우리”가 있다고 외치고 싶어진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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