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동성애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20-12-31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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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지나갔다.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비단 기독교인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즐거운 축제일이지만, 모두를 위해 모임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아쉽고 안타까운 건 기독교인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보면, 친구들과 교회에서 선물도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러하듯, 성탄절의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는 교회는 이방인에게 환대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환대의 공간일까?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서만큼은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부 목사들과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익히 들어 아는데, 그럼 이웃인 자와 이웃 아닌 자 범주가 따로 있는 걸까? 그 범주는 누가 정하는 걸까? 사랑의 방식은 누구를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 극우 기독 세력의 행보는 아무래도 예수님 말씀과 영 반대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성서에 무지한 데서 오는 오해인 걸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담긴 성서를 그 근거로 든다. 성서에 “동성애 하지 마라”는 문구(text)가 정말 있는지, 그 문구가 나오게 되는 맥락(context)는 무엇인지 늘 궁금했던 차에 <경향신문> 칼럼으로 종종 만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김진호 님의 <성서와 동성애>라는 책이 눈에 띄어 읽어보았다. 그는 성서에 대한 해석은 신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며, 어느 해석이 더 ‘역사적 개연성’을 갖고 있는지는 결국 독자의 몫이라는 점을 말머리에 두고 텍스트(text)의 컨텍스트(context) 해석을 시작한다. 성서에서 “동성애 반대”로 사용되는 텍스트는 3~4개 정도인데,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사사기> 19장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 그 성읍의 불량한 사내들이 몰려와서, … 집주인인 노인에게 소리 질렀다. “노인의 집에 들어온 그 남자를 끌어내시오. 우리가 그 사람하고 관계를 좀 해야겠소.” 그러자 주인 노인이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젊은이들, 제발 이러지 마시오, 이 사람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그에게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제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마시오.”


<해석 1> 흔히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묘사는 집단 성폭행과 동반해 나타나는데, 이는 동성애에 대한 가치 평가를 보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죄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애가 심히 왜곡될 때에 동성애로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해석 2> 에브라임 산골에 살던 레위인이 ‘둘째’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베들레햄으로 갔다. 돌아오던 중 해가 저물어 베냐민 부족의 성읍 기브아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으나 아무도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점, 주인 노인이 불량배들을 달래기 위해 레위인 대신 자기 딸과 레위인의 아내를 내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레위인의 아내만 밤새도록 성폭행했다는 점에서 불량배들은 동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아니라 레위인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성서에서 ‘관계 맺다’라고 번역하는 히브리어 ‘야다yadah’는 문맥상 대상에게 적개심을 표현하는 욕설일 뿐이다.


밤새 능욕당한 아내가 가까스로 남편이 묵은 집 앞까지 오자, 레위인은 아내를 나귀에 싣고 에브라임으로 돌아가 그녀를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부족들에게 보낸다. 토막 난 시신을 받고 모인 부족들은 기브아인들에게 보복전을 벌이자는 결의를 하고, 레위인이 겪은 수모는 이스라엘 부족 전체의 수모로 확대 해석돼 ‘공분과 응징의 정치학’이 작용하게 된다.


<사사기>는 부족동맹 이스라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후대 유대왕국 서기관이 집필했다. 그런데 기브아는 유대왕국 시조 다윗의 라이벌인 사울의 고향이므로 집필자와 독자의 편견이 작용했음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군주제로의 이행기에 있던 부족동맹 이스라엘은 권력분산형사회를 지향한 에브라임과 권력집중형사회를 지향한 베냐민 사이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부족동맹 이스라엘의 주도 세력은 에브라임 부족이었다). 그러므로 레위인 아내 윤간 사건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던 두 부족 간의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건이었다.


자, 이제 독자의 선택만이 남았다. 어떠한 해석에 역사적 개연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존재임을 자부해온 레위인이 ‘제3자’인 여자의 죽음을 이용해 외치는 ‘정의’는 정말 ‘숭고’한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며 “동성애 반대” 텍스트(text)를 외치는 이들의 컨텍스트(context)를 다방면으로 해석해 보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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