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고원의 범장군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5-24 0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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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보고서(6)
▲ ©문정훈 화가

 

개마고원 포연계 산포수들

석이는 계곡을 타고 지경산을 올랐다. 후치령을 넘던 길손들과 마바리 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골짜기에 들어선 석이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혼자 나선 범 사냥은 모험을 넘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사람이 한 번 볼 때 백 번을 본다는 매서운 눈, 거기다 부드러운 고무발로 접근하면 누구도 눈치챌 수가 없다. 압도하는 힘은 말할 필요도 없고, 청각과 후각은 사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도 어디에서 이런 대담한 모험이 나왔을까? 산포수들의 가장 큰 무기는 끈기와 집념이다. 자신이 들어가는 곳이 설령 범 아가리 속일지언정 범을 잡아야겠다는 미련하고 우악스러운 피가 산포수들에겐 흐른다. 


또 다시 범 우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장육부를 뒤트는 음흉한 울음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범이 울부짖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부상을 당했거나 아니면 올무에 걸렸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말했다. 호랑이는 진호 때문에 죽고, 사슴은 사향 때문에 죽고, 사람은 입 때문에 망한다고. 바보스러우리만큼 자신을 노출하는 습성이 있는 범은 구태여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노련한 사냥꾼은 그걸 노렸다. 특히 바위 위에 우뚝 서 포효하는 범은 손쉬운 저격 대상이다. 제아무리 절대 강자라 해도 자신의 위치를 알라는 것은 나를 저격하러 오라는 공개서한이다. 서양식 라이플 사냥총은 사정거리가 수백 미터나 되는 장거리 총이기 때문에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고 범을 쓰러트릴 수 있다. 


하늘이 막힌 호리병 계곡은 백주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쓰러진 거목들이 널브러졌고, 철조망 같은 가시덤불이 발목을 끌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 내려오는 원시림 음(音)뿐이다. 구슬땀 흘리며 산 중턱에 올라서자 장엄한 함경산맥의 줄기가 펼쳐졌다. 북청 안산면과 풍산 천남면에 걸쳐진 두운봉(2487m)은 백두산 자락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석이는 병풍바위로 갔다. 병풍바위 아래는 짐승들이 흔적을 남기는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범이나 곰, 노루 등 온갖 야생짐승들이 드나들며 오줌이나 털을 문질러 흔적을 남기는 우체통 같은 나무였다. 이 일대를 잘 아는 산포수라면 이곳에 들러 확인한다. 석이는 나무 밑둥치에 코를 갖다 댔다. 역한 오줌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범을 추적할 땐 반나절은 떨어져라. 가까운 범은 어느새 등 뒤로 돌아와 있다.”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병풍바위 너머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홍범도와 차도선 두 아바이였다. 


“아바이!” 


석이가 큰소리로 불렀다. 석이를 본 두 산포수가 손을 흔들었다. 


“석이구나. 석아!” 


달려간 석이가 홍범도 품에 안겼다. 


“혼자 무서웠겠구나. 허허허.” 


털거지 사납게 생긴 홍범도 아바이의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은 살짝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차도선 아바이가 석이 어깨를 다독거렸다. 두 아바이는 석이가 꿈꾸는 산중호걸들이다. 석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석아, 네 모험이 장하긴 하나 맨주먹으로 범을 잡는 포수란 없는 법이야. 앞으론 혼자 다니지 말거라.”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던 홍 아바이가 걸망 속에서 삶은 감자 몇 알과 칡뿌리를 내놓았다.


“아바이, 범 보셨습네까?” 


“봤지. 이 놈은 꼭 잡아야 돼. 사람 잡아먹은 식인범이야. 남쪽에서 올라온 범이 분명해.” 


두 아바이는 지역 산포수들의 동종단체인 포연계 대장들이다. 홍범도 아바이는 북청산포계였고, 차도선 아바이는 갑산산포계 소속이다. 두 아바이는 엄방동 석이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두 아바이가 소지한 신식 사냥총은 우리 아버지가 구입해줬다. 석이는 아버지와 두 아바이를 따라다니며 사냥술을 익혔다. 범잡이와 곰잡이, 사슴, 멧돼지에 몰래 접근하는 몰이술, 지형지세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 ©문정훈 화가

범과의 정면승부

소리 없는 추적이 시작됐다. 민첩한 차도선 아바이는 속도전을 하는 산행포수였고, 홍범도 아바이는 억척같은 돌파력으로 정면승부했다. 차 아바이가 곧음을 잃지 않는 참대라면, 홍 아바이는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같은 존재였다. 변화무쌍한 산중 골짜기에 소낙비가 쏟아졌다. 서북 방향의 황수정 산기슭으로 10리쯤 이동했을 때는 국지성 폭우로 변했다. 세 사람은 비를 피해 산 아래 화전민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서 멀지 않는 산마루에 까마귀 떼가 맴돌았다. 범이 먹다 만 사체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냥 내려왔다. 범은 자기가 잡은 먹이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멀리 가지 않고 주변을 지키는 습성이 있다. 산중의 화전 마을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세 사람은 분노했다. 식인범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의 습격을 받은 화전민 어미는 딸아이를 잃고 망연자실해 있었다. 다음 날, 세 산포수는 날이 밝기가 바쁘게 산으로 올라갔다. 신중한 홍범도 아바이와 석이는 바위산 인근 잠복소에서 대기하고, 발 빠른 차도선 아바이가 병풍바위 수색에 나섰다. 산 비알에 숨어있던 식인범 정체가 드러났다. 차 아바이가 쏜 총탄에 빗맞은 식인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놓치면 안 돼.” 


식인범은 홍범도 아바이와 석이가 있는 잠복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홍 아바이가 식인범을 향해 라이플을 쏘았다. 총소리는 산을 흔들며 길게 울려 퍼졌다. 어깻죽지에 총탄을 맞은 식인범이 가르릉 송곳니를 드러내며 용수철 같은 네 발로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또 다시 총성이 울렸다. 사지를 바르르 떨며 죽어가는 범 가슴팍에 총을 쏴 숨통을 끊었다. 잡고 보니 60관짜리 늙은 수컷이었다.


포획한 범을 번갈아 가며 메고 산을 내려왔다. 총소리를 들은 사냥꾼이 대형 아키다견을 몰고 올라오고 있었다. 왜인 사냥꾼 미우라였다. 그는 노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눌려 앉은 친구였다. 차도선 아바이는 일전에도 잡은 곰을 놓고 이 친구와 부딪친 적이 있었다. 차 아바이가 선발로 쏘아 놓은 곰을 자기가 잡았다고 우겼다. 선발을 맞고 달아나는 사냥감은 다른 포수가 쏘아 잡았더라도 우선권은 선발을 놓은 포수에게 있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미우라는 끝까지 우겼다. 티격태격 끝에 결국 신고가 들어가게 됐고, 갑산주재소 왜인 순사는 미우라 편을 들어 줬다. 


“차상, 범 잡으노 주재소에 신고 모르나?” 


조선의 알짜배기 산림 투전꾼답게 서툰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이 범은 사람 잡아먹은 식인범이요.” 


거만과 무시가 몸에 밴 자였다. 말하는 꼬락서니가 얄미웠던 차도선 아바이가 응수했다. 


“사람이노 잡아먹었는지, 개돼지노 잡아먹었는지 배 따봐야 아노이다.” 


평소 아래위가 분명한 홍 아바이가 미우라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울화를 참지 못했다. 


“조선 배를 따면 됐지 범 배때지까지 따?” 


“뭐야? 이 건방진 조센징, 뜨거운 맛이노 봐야겠구나!” 


자초한 격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미우라가 어깨에 멘 총을 겨눴다. 


“쏠 테면 쏴 봐.” 


홍범도 아바이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미우라를 쏘아봤다. 호랑이 화덕 눈깔에 질린 미우라는 머뭇거렸다. 


“이봐, 총이란 말이야, 겨눌 때 겨누는 거지 아무 데나 겨누는 게 아니야. 시답잖은 총대가리 함부로 놀리다간 자기 발등 쏠 날 있다는 걸 명심하게. 자, 가지.”


세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려왔다. 뒷모습을 보고 선 미우라가 치를 떨었다.

식인범의 해체

범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딸아이를 잃은 화전민 아낙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덕석 위에 꺼꾸러져 있는 식인범을 본 아낙은 짚신을 벗어 범 귀싸대기를 후려갈기며 울부짖었다. 


“이 원쑤 도루바리, 내 새끼 살려내라. 이 도루바리 원쑤야!” 


도루바리는 범의 함경도 사투리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범 아가리를 벌려 송곳니를 뽑으려거나 혀를 당기고,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혼이 나간 아낙은 홍범도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홍대장 아바이, 이 원쑤 뱃속에 있는 내 새끼 좀 꺼내주오. 그래야 장례라도 치를 거 아니요. 으흐흐흐.”
비통해하는 아낙을 지켜보던 산포수들은 마을포수 유재갑과 의논했다. 식인범 뱃속에 든 딸아이 육신 일부라도 끄집어 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식인범 해체가 시작됐다.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범 고기는 먹지 않는다. 홍 아바이는 해체하기에 앞서 산군에 대한 정중한 예의부터 올렸다. 이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사냥칼로 배를 갈랐다. 뼈와 내장 도륙은 유재갑에게 맡기기로 하고 위장만 잘라냈다. 부푼 위장 속에는 소화가 되다 만 살과 뼛조각 따위가 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뒤져보니 딸아이의 인육 일부와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위장 속에서 찾아낸 인육과 뼛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내 한지에 쌌다. 그리곤 슬피 우는 딸아이 어미에게 넘겨줬다. 세 산포수는 범 턱주가리 수염 몇 올을 뽑아 쌈지에 간직했다.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범에 대한 보복은 여기서 끝났다. 


값나가는 호피나 용골(龍骨) 처리는 마을포수 유재갑에게 넘기기로 했다. 범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더불어 갑산주재소 신고는 유제갑이 하기로 했다. 미우라가 본 이상 신고를 하지 않으면 뒤탈이 생길 수 있었다. 갑산주재소 순사 일행이 찾아온 것은 이튿날이었다. 사무라이 칼을 찬 왜경과 방망이를 든 일진회 회원들은 대충 조서를 꾸민 후 식인범을 달구지에 싣고 떠났다.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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