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사치

이경하 크리에이터 / 기사승인 : 2021-05-24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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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은 진정 여유가 될 수 있을까? 조그마한 잔에 담긴 비싼 값의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밥벌이하기도 힘든 세상에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어떻게 ‘여유’일 수가 있는가. 궁핍한 젊은 세대에게 커피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지만 인간관계를 위해 시간과 돈을 지불하는 나는 값이 비싼 커피에 항상 불만을 갖고 있었다. 휴식과 소통의 공간 하면 떠오르는 곳이 카페이지 않은가. 이제는 잠깐의 휴식마저도 각박해진 세상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치’는 늘 죄악시 여겨왔지만 우습게도 인간은 사치가 존재하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모순적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무엇을 위해 밤잠 줄여가며 살아가겠는가. 커피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부지런히 출근하고 있지 않은가.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다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그냥 적당히 살면 안 될까?’하는 생각 또한 늘 마음속 한편에 자리하게 된다. 


마트나 인터넷에서는 세일을 밥 먹듯이 자주 하는데 왜 우리 삶에서는 세일이 존재하지 않을까. 성인이 돼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됐을 때 미친 듯이 일하고 버는 족족 의미 없는 하루살이식의 소비를 했다. 가난했던 유년기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아르바이트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남들은 다 갖고 있었지만 내게만 없었던 유행하는 패딩을 가장 먼저 구입했다.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과 욕망을 꾸역꾸역 누르고 살았던 감정이 자격지심과 결핍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대학교 친구들과 비싼 점심을 먹고 또 다시 비싼 커피를 마시러 갈 때, 나는 묘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이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같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안일한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됐다. 마음이 공허해질 때면, 자격지심을 느낄 때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쇼핑하는 것에 몽땅 소비했다. 


미뤘던 방 청소를 하다 수많은 옷과 화장품을 발견했다. 그중 시간이 지나 사용하지 못하는 제품과 유행이 지나서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이 많았다. 40벌이 넘는 옷을 버리며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많은 옷을 샀는가? 내 소비는 자신을 위한 꾸밈이라고 당당히 말해왔지만 산더미처럼 생긴 불필요한 쓰레기들을 보고 정말 나를 위한 꾸밈과 소비였는지 한참을 생각하게 됐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한 번 입고 꺼내지 않은 옷들 속에 유독 무릎이 늘어난 바지와 목이 늘어난 반팔티가 눈에 띄었다. 애초부터 내가 입을 옷은 정해져 있다. 유행도 안 타고 편하면서 깔끔한 옷, 그것이 내가 원하고 만족하는 옷이다. 그런데 왜 나는 불필요한 옷을 계절마다 집착해서 소비했을까. 그 옷과 꾸밈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 불편한 옷은 묵히고 묵히다가 결국 쓰레기가 돼 버려졌다. 하지만 흰 티에 청바지, 내 본질은 항상 남아 있다. 


신발장에 가득 찬 신지도 않는 구두와 행거를 부러뜨릴 정도로 걸려있는 가방,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화장품들을 쓰레기봉투에 가득 또 가득 담았다. 나는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는가?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또 다시 쓰레기를 소비하는가?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밤잠을 설쳤다. 나를 빛나게 해줄 부수적인 꾸밈요소들은 이미 충분하게 갖고 있다. 현혹되기 쉬운 SNS 세상에서 내 본질을 잃지 않고 살아가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됐다. 인간은 사치를 부리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 사치는 옷과 커피보다는 조금 더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경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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