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이영선 문화공간 소나무 대표 / 기사승인 : 2021-05-24 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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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 리더십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건너편 산봉우리에 걸려 맑은 하늘과 대비되고, 새봄이 온 뒷밭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날씨가 화창하다. 지금은 봄이고 나는 여기에서 평안하다.


지난 토요일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내용은 그녀의 남편이 간암에 걸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그녀의 아픈 사연이 남편을 비슷한 병으로 잃은 내 가슴을 비통하게 하고 저려냈다. 누구나 생로병사에 대해서 알고 있고 상실의 아픔과 남겨진 자의 외로움을 겪는다.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소리 죽이고 울어본다. 눈물이 마를 즈음에 아픈 마음을 달래면서 다리아(세례명) 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언니의 생활을 생각한다. 나는 그녀와 서생의 진하해수욕장 모래밭에서 걷기 운동을 하곤 한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그녀는 지금 간암으로 투병 중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성당에서 종교활동도 열심히 한다. 노인 뮤지컬단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서 매일 바닷가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노인복지관에 가서 우리 춤, 영어 등을 배운다. 다리아 언니는 나를 만나면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고 배우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사회에서 소중한 관계를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배운다. 배우는 인생을 위해서 누구나 새로운 지식을 수용한다. 이러한 배우는 마음은 먼저 주체가 확립된 마음이어야 한다. 주체가 확립된 마음이라 함은 내 인생을 홀로 올바르게 세우고 사는 마음이다. 내가 설 자리에 서기 위해, 내 위치를 바로 정하고자 배운다는 것은 위대하다. 위대한 다리아 언니처럼, 교육과 자기개선을 위해 배움에 몰두하는 시절은 언제나 희망에 차고 싱싱하기만 하다. 누구든지 배움을 박차버린 시간부터 초조와 불안과 적막이 앞을 가로막는다. 글을 배운다고 그것이 인생을 배우는 것은 아니며 지식이 쌓인다고 그것이 인생을 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배움의 소재라는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나 도서관의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배우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환경이 배움의 소재가 된다. 


배움을 통해서 성장해가는 노인이 배움을 외면하며 죽어가는 젊은이보다 훨씬 더 낫다. 그러므로 언제나 나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 내 경우,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끝없이 깊은 인생을 알아도 언제나 모자라는 것이니 우리는 묵묵히 머리를 숙이고 배우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소중한 관계를 위해 배우고자 한다. 왜냐면 한 사람의 배우는 인생이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게 돼 집단지성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은 ‘어디에나 분포하고,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Pierre Levy 정리)’이다.


내가 아는 다리아 언니는 오랫동안 겪어 온 온갖 고생에 지치지 않고, 또 병마라는 비바람에 시달려도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서산에 해가 기울고 외로운 밤이 되면 언니는 수를 놓는다. 그녀는 밤을 새우면서 수를 놓아 주위 지인들에 기쁨을 선물한다. 더 이상 베개에 눈물범벅 얼룩을 만들지 않고 또 새로운 지식을 꿈꾼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면서 주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미한 나는 수많은 ‘나’가 되어 모이면 높은 지능체계를 가진 지역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나 하나보다 똑똑하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다. 나만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힘을 끌어 내 보자.


이영선 문화공간 소나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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