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지는 영화, <백엔의 사랑>

정승현 시민 / 기사승인 : 2021-05-25 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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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소리

 

영화 <백엔의 사랑>의 주인공 이치코는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32살 백수다. 그는 아수라장이 된 방 안에서 조카와 게임 하며 담배를 피우는 건 기본, 입 냄새가 너무 심해 엄마에게 치과 가라는 잔소리를 듣다 친언니와 싸움이 붙어 결국 집을 나가게 되는 주인공이다. 어쩔 수 없이 독립해서 살아야 하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의욕을 갖고 면접 보거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게 아니라 우연히 편의점에서 물건 사다 발견한 공고를 보고 편의점 알바를 하게 되는 그런 주인공 말이다. 


계속 노력했는데도 삶이 잘 안 풀려서 이렇게 자포자기가 된 건지, 원래 의욕 없는 성격인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 중반부까지는 보는 내내 이치코의 말과 행동이 답답했다. 이를테면, 옆에서 성희롱하는 늙은 동료에게 왜 분명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지, 심지어 그 동료가 모텔로 끌고 갈 때도 왜 세게 저항하지 않는지. 무뚝뚝한데다 막말까지 하는 복싱장 남자에게 왜 빠져드는지. 아내도 아닌데 그에게 왜 밥을 차려주겠다고 자기 집을 내어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그런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치코가 복싱을 하면서 생겨나는 변화에 홀려서 끝내는 시합 장면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가 한 번만이라도 꼭 이기고 싶었다고 울면서 얘기할 때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생생하게 그려져서 퍽 공감이 갔다. 삶에서 계속 지기만 했던, 어떤 것도 잘 풀리지 않아서 쓰러져야만 했던 이치코의 그 마음. 그런 상황이어서 그가 (우리가 보기에) 답답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그도 본인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걸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끝내 그를 이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인 직장 동료가 잘못된 행동을 한 거지, 거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고 피해자인 이치코를 비난하는 건 또 다른 2차 가해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이 영화는 찬란하게 이기는 영화가 아니라 처절하게 지는 영화다. 동시에 지지 않고 일어서는 영화기도 하다. 삶에 강펀치를 맞고 계속 쓰러지는 이치코는 아프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 힘이 반짝이는 영화다. 


몇 년 전 나도 처절하게 실패했고 포기했기에 나름대로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포기도 용기란 사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나를 혹사시켜 가면서까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소 냉소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건 부끄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치코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건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행동이고, 나약한 인간이 강인하게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어서더라도 이치코처럼 지고 실패하는 게 우리네 삶이겠지만, 그래도 일어선다는 건, 살아가겠다는 건 눈부신 일이다. 


정승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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