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광장은-최인훈 <광장>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07-27 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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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숲 시즌2-방황
▲ 박가화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왼쪽)과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

 

분단작가 최인훈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작가 최인훈을 소개해 주세요.


박가화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작가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납니다. 회령은 두만강변에 있는 국경도시인데요. 중국과 국경을 접해있고 대륙진출을 노렸던 일본제국주의가 전진기지로 활용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근 국가 러시아와 같은 여러 나라의 문화들이 섞이며 공존하던 독특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작가의 다문화 수용과 유랑의 정서는 그와 관련이 있다고도 전해집니다. 


원산으로 이사 와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던 해 6.25 전쟁이 일어나고 가족과 함께 목포로 피난 와서 목포고등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당시 부산으로 옮긴 서울대 법대를 진학하게 되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2017년에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1957년에 통역장교로 입대하게 되는데요. 1963년 제대하기 전까지 군 복무기간 동안 <자유문학>지를 통해 단편 ‘그레이 구락부의 전말기’ ‘라울전’을 내면서 등단하게 되고 1960년에 ‘광장’을 <새벽>지에 발표하게 됩니다. <광장>은 지식인의 방황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그 당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평론가 김현은 1960년대 소설사적인 측면에서는 광장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집필 생활과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문인 제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작가는 ‘동인문학상(1966), 동아연극상(1971),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2018년 대장암으로 향년 84세의 나이로 영면에 듭니다.

‘광장’의 현재성

최미선=광장의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전후입니다. 우리에게는 부모 세대의 일이고 우리 부모 세대 또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라 기억에서 희미해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현재성을 갖는 이유는 우리에겐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그늘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박가화=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당시 지식인의 갈등과 방황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하는데요. 이명준이 말하는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을 차례로 겪으면서 양쪽 모두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한반도 분단, 4.19혁명과 같은 정치적인 혼란 속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이념을 상대로 사상적 고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가 바로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분단상태이고 여전히 이념대립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꾸준히 읽히고 있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수정과 개작을 여러 번 거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첫 발표와 단행본 출간(1961년) 이후 적어도 열 번 이상의 크고 작은 개작을 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은 작가 최인훈이 <광장>이 지닌 문학사적, 시대적 의미를 자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만들어 낸 인물의 사유와 행위 그리고 고민과 선택에 끊임없이 현재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의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시대의 광장

최미선=오늘날 우리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에겐 수많은 광장의 현장이 있었습니다. 5.18항쟁도 그렇고 촛불집회도 그렇고, 명준의 광장과 우리의 광장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박가화=광장은 공동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반면 밀실은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곳도 돼야 하고요.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바로 이명준이 꿈꿨던 광장의 이상향이었습니다. 광장과 밀실은 자로 재듯 이분화할 수 없습니다. 이명준은 어쩌면 그 시대의 그런 이분법적인 사회 맥락에 함몰됐을 것입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 돼야 합니다. 


다행히도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광장은 복합성을 품고 있습니다. 밀실이기도 광장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나와 버스킹하고 스포츠도 즐기면서 개인의 공간으로 이용하다가도 이슈가 되는 일이 있으면 공동의 공간으로 광장을 채웁니다. 월드컵 응원, 촛불집회, 다른 성격의 것이지만 우리의 광장은 어느 것이든 다 품어내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다르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 흐름 속의 광장에서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더 높이 외치는 힘, 그게 바로 우리 민족이 가진 힘입니다. 때문에 개인의 밀실과 공동의 광장이 공존하면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희망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도 이명준의 광장

최미선=이명준이란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요?


박가화=이데올로기 따위엔 관심 없는 평범한 철학과 대학생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선택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젊은이답지 않게 감상적이고 피상적이며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삶의 알맹이, 삶을 유지케 하는 자신 내면의 씨앗이라 표현되는 보람에 대한 욕구가 굉장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갈증이 아주 강한 사람이죠. 그는 거시적인 역사와 미시적 존재인 개인 사이에서 함몰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놓지 않습니다. 그의 사유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진행형이기 때문에 여전히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최미선=철학도라는 상징이 그의 성격을 일부 짐작하게 해줍니다. 행동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사색하는 인간에 가깝습니다.


박가화=이명준은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고 고민합니다. 어두운 광장에서는 피어날 수 없는 씨앗, 그것을 싹 틔울 수 있는 광장을 갖는 것, 그것이 명준이 찾는 삶이었다 볼 수 있습니다.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이명준이 행동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세파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면서 서 있기란 정말 처절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담금질은 누구보다도 격렬했을 듯합니다.

윤애와 은혜, 명준을 성장시키다

최미선=명준에게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각각 어떤 인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박가화=두 여인 윤애와 은혜입니다. 갈 곳 잃어 방황하던 이명준이 기댈 곳은 사랑이었습니다. 그에게 위안이 되어 준 두 여인 윤애와 은혜, 그녀들은 아주 상반된 캐릭터로 나옵니다.


윤애는 날마다 변하는 날씨처럼 그가 정착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가 하면 밀어냅니다. 이명준이 자신의 두 팔을 모아 오직 한 여자를 품을 만큼의 작은 광장을 가지고자 하나 윤애는 그것마저 내어 주지 않습니다. 마치 흐르는 물 같은 여자입니다. 격변의 강물이 흐르는 바닥에 서고자 하는 명준에겐 오히려 같이 쓸려 넘어져 버릴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명준은 그녀에게 함께 가자는 말조차 남기지 않은 채 혼자 월북하게 됩니다. 


북에서 만난 은혜는 아주 주체적이고 현실적인 여성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여자였습니다. 러시아로 가겠다는 은혜에게 자기 곁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이명준은 어찌 보면 좀 찌질해 보이는데요. 그런 그에게 달래듯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떠나버리고 말죠. 전쟁이 나자 북한에 돌아와 간호사로 지원해서 전쟁터로 이명준을 찾아 나섭니다. 아주 주도적인 여성입니다. 전쟁 속에서 이명준에게 광장을 선물처럼 주는 여인, 그런 그녀는 폭격으로 죽고 맙니다. 명준이 오롯이 가졌던 광장을 잃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항상 명준을 바라보는 얼굴 없는 눈으로 따라다닙니다. 마치 출렁거리며 흐르는 강물을 벗어나 큰 바다로 다다르게 하는 부표 같은 여인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광장, 머물 곳이 없다

최미선=명준이 북한으로 월북합니다. 남한 사회에 대한 실망감 때문입니다. 어떤 실망감이었나요?


박가화=이명준이 본 남한은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와 밀실만 있는 곳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의 정치, 그에게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 가장 거친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거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똥, 오줌과 같은 오물을 처리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정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더미만 쌓여가고, 모두의 것이야 할 것들은 자신들의 밀실에다 채우고, 정작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혐오합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은 곳,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텅 비워진 광장. 자신은 결코 이와 같은 남한에서 광장으로 시민을 불러내는 나팔수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명준은 광장을 찾아 북으로 향하게 되는 거죠.


최미선=북한에서의 삶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북한이 싫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가화=이명준이 느낀 북한은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와 신념이 없는 광장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찾아 월북했지만, 그곳에서도 꿈꾸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가까이 가면 당이 하라는 대로 복창만 하고 있는 잘 깎아놓은 장승 같은 사람들뿐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시에 따른 의무만 있는 광장, 그곳에 개인의 밀실은 없었던 거죠. 그들은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를 낼 뿐이었습니다. 인민을 위한다지만 인민이 없는 광장. 명준은 이런 호랑이 굴에 스스로 걸어들어온 자신을 저주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근원을 찾아 떠나는 영웅서사, 명준

최미선=결국 명준은 제3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선택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가화=이명준에게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더는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중립국, 아무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땅, 온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그곳, 중립국을 택합니다. 중립국으로 가는 희망의 뱃길, 새 삶의 길이지만 이명준의 가슴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최미선=이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체가 등장합니다. 부채, 갈매기, 광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박가화=부채는 명준의 삶의 과정과 운명을 상징하는 소재입니다. 명준의 삶의 광장이 점점 줄어들고 닫혀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북 자리라는 한계적 상황에 이르게 된 명준은 이 사북 자리에서 과거의 모든 삶을 지운 채 체념적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원했던 이상적인 공간이 어디에도 없음에 절망한 이명준은 크레파스보다 진하고 푸른 바닷물을 보게 됩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쉬는 바다. 바로 그곳이 그가 찾고자 했던 광장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날고 있는 진한 바다 색깔과 대조돼 다른 어느 장치보다 쉽게 인식되는 흰 갈매기 두 마리는 은혜와 그녀가 낳았을지 모르는 아이의 상징물이 됩니다. 그 새들이 계속 명준의 위를 날아다니며 따라오는 것은 그의 과거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갈매기들이 감시자가 돼 계속 명준을 따라오는 한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는 바닷물에 뛰어드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합니다.

인간 사이, 광장

최미선=한 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입니다. 사람 사이에 있습니다. 그것이 편안함이 되기도,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명준에게는 인간이 굴레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유롭게 사색하며 인생을 살아갈 여지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가요. 샘은 인간 사이에 있다는 것이?


박가화=사람 속에 있다는 것,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말이죠. 인간 사이에 있다는 것은 수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굴레겠지요. 이명준 또한 그 속에 있었구요.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거나 극적인 변화를 바랄 때 우린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산해내야 하는 내적 동기가 필요합니다. 무리 속에 있지만 따로 홀로 성장하고 생산하는 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는 자신만이 건져낼 수 있는 거니까요.

명준의 새로운 시작, 심연 속으로

최미선=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위험합니다. 개인으로도 집단으로도 위험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있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대하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박가화=이 책에서 젊은이로 나오는 이명준은 도전하지 않고 비판이 앞서는, 즉 대의가 아닌 소의를 추구하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현실 속의 젊은이들에게 더 공감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변화를 앞세우는 대의보다 당장 나의 먹고사는 문제의 소의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만큼 미래의 불투명성에 고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죠.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꼭 대의를 위해 투쟁하고 바꾸고 변화시키는 동력이 돼야만 한다는 것도 이념 사상과 다를 바 없는 관념의 틀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양태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들과 잘 살아가려면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요. 식상한 말이지만 이 말을 쓸 수밖에 없네요. “No pain No gain.”
사실 이 책에서도 사상적 대립 갈등과 사회적인 불합리성 등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양태를 낳은 윗세대로 보이는 정 선생과 아버지는 정작 ‘광장’ 속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침묵합니다. 그들 또한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지 못하긴 마찬가지였겠지요.


최미선=결국 명준은 자살을 택하고 맙니다. 죽음의 이유를 짐작해 본다면요? 


박가화=이명준은 자신이 담길 수 있는 광장과 밀실을 위해 남과 북이라는 수평적 이동을 했습니다. 제3국 또한 그런 수평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동들은 그에게 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한 고뇌를 안깁니다. 타고르호에서 이명준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선실과 선장실, 갑판 등으로 수없이 움직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침대도 이층침대입니다. 마치 새가 도약을 위해 날개짓하는 것처럼 이명준 또한 새 세상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상징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갑판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봅니다. 푸른 광장, 자신에게 답을 주지 못한 수평이동이 아닌 수직이동. 그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습니다. 이명준은 수직이동을 시도합니다. 푸른 바다로 뛰어드는 것. 그에게 새 세상이 되어 줄 수직이동을 감행한 것입니다. 저는 자살이라 결론 맺고 싶진 않습니다. 광장, 밀실이라는 관념적인 비유로 접근하지만, 시야가 더 넓어짐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싶어요. 도식주의에 머무르지 않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이명준의 새로운 시도라 보고 싶습니다.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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