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의 보편적 권고마저 외면한 국회

김재인 한국노총 울산본부 정책실장 / 기사승인 : 2020-12-16 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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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사회연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모든 노동자가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이른바 ‘전태일 3법’이다. 21대 첫 정기국회.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쟁점 노동법 7개를 포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등 노동관계법 10개 개정법률안이 의결, 통과됐다.


언론에서는 국회의 이번 노조법 개정을 두고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평가들이 나온다. 그러나 노동계는 ‘역대급 노동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채 재계의 입장만 반영된 근로기준법 개악과 ILO 핵심협약에 위배되는 노조법 개정이다. 여기에 지난 7월,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여야 할 것 없이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여론에 떠밀려 여야 모두 임시국회 때 논의하겠다는 게 전부다. 여기에는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회에서 180여 석 가까운 거대 여당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공수처 법안 등을 통과시켰듯이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노동계는 이번 국회의 노조법 개정을 최악으로 평가하는가. 


첫째, 정부 여당은 근기법 개정을 통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되고,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의 확대는 지난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에서는 사회적 합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업무’에 대해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것이 추가됐다.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는 제조업을 비롯한 거의 전 산업에 존재하는 업무다. 직접적인 연구개발 업무 외에 보조업무까지 포함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는 장기간의 집중적인 장시간노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노동이 확대될 우려가 커져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사실상 주 최대 52시간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둘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은 ILO 핵심협약과 무관하거나 이에 위반되는 정부 개정안을 그대로 유지했다. 해고자 등 비종업원인 조합원의 대의원,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유지한 채 단협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했다. 무엇보다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에 관한 조항들은 개선되지 않았다. ‘근로자의 정의’를 좁게 정의한 노조법 2조를 수정하지도 않았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막은 2조 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지도 않았다. ILO는 행정당국이 노동자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2조 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고,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노조법 2조에서는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이들의 노조할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추가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셋째, 산재 발생과 대형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에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도 않은 채 좌초되고 말았다. 여야 3당 모두 법안을 발의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찬성했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9월 교섭단체 연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공언했다. 대통령도 중대재해법 제정을 강조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거대 양당은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요구에 침묵했다. 여야 모두 연말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입법화될 지는 미지수다. 


지난 정기국회는 코로나19로 고통받고 희생되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노동권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할 권리 보장, 연간 2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법제도 마련이 그것이다. 오히려 장시간노동과 불규칙노동이 확대될 우려가 높아진 근로기준법 개정과 ILO 핵심협약에 위배되고 노동조합 할 권리를 제한한 것은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가 노동존중을 약속해 온 터라 한마디로 부끄러운 노조법 개정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재인 한국노총 울산본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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