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 에세이] 시간의 뿌리를 묻거든,

최수미 / 기사승인 : 2015-11-12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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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보다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답한 것을 들은 적이 없다.
“1초 = 세슘 원자가 9,192,631,770 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그래서 시계로 일상의 스케줄을 짜는 세계인들의 하루는 세슘원자가 ‘9,192,631,770 x 8만6400초’ 진동하는 시간이며, 여기에 365일을 곱하면 사람들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1972년 1월 1일 국제협약에 의해 1초가 이렇게 정해지기 이전에는, 지구가 한번 자전하는 하루의 평균시간을 1/86,400로 나눈 것이 1초였다. 그러나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자본가들의 욕망은 ‘더 정확한 시간’을 요구하며 시간을 쪼갰고, 그 결과 세슘원자의 진동수가 세계인들의 시간을 재는 뿌리가 되었다. 물론 자본가들의 무한한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으며, 시간은 더 잘게 부수어진다.

나노초(nanosecond) 1/1,000,000,000 초,
피코초(picosecond) 1/1,000,000,000,000 초,
펨포초(femtosecond) 1/1,000,000,000,000,000 초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를 1/75초(≒0.013초) 정도라 하는데, 이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은 그 자체가 시간의 재앙이었다. 우리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 10만, 20만 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인생의 관점으로 볼 때, 영원하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자본에 의해 이렇게 달성되었다.

체르노빌 이후 완전히 달라진 세계에서 과거는 이제 인간을 보호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 과거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의 땅으로 기록된 체르노빌에 미래 또한 없다. 아니, 오히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미래이다. ‘핵’ 앞에서 어떠한 말도 의미를 상실했다며 침묵시위를 했던 이반 일리치 행동 또한 이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간의 무덤이 되어버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이미 하나의 진실 된 세계이다.

‘핵’ 앞에서 시간을 잰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그래서 인가? 핵발전소 안에 핵쓰레기(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된 ‘임시’저장소의 ‘임시’는 이미 38년을 넘었고, 핵발전소 안에 짓자고 하는 ‘단기’저장소의 ‘단기’는 천년을 의미할지 이천년을 의미할지 알 수 없다.

두 개의 진실 된 세계가 마주하고 있다. 쪼개질 대로 쪼개져 흩뿌려지는 시간을 붙들고 있는 형체모를 세계가 그 하나라면, 과거도 미래도 파괴된 영원한 또 하나의 세계가 자본의 이름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진실을 마주하고 어찌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인가?
부처님이 말씀하시어 가로되, “시간이 뭔지 그런 헛된 질문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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