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에세이] 삶의 의미를 묻는 아들에게

최수미 / 기사승인 : 2015-11-26 14: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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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걸으며 너는 내게 물었지.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냐고.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민중대회에서 한 농민이 경찰 최루액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접한 바로 뒤였지.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운 세상에 네가 살길 바랐는데, 세상은 그렇지 못하네, 라며 한탄하는 내게 너는 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며 나보다 더 큰 한숨으로 답했지.




비가 내리는 겨울 밤길, 네 마음을 적시는 차갑고 어두운 비를 어찌할 수 없어 한참이나 걸었지. 너도 이젠 열일곱 살, 어린 애는 더 이상 아니지. 그럼에도 네가 신문을 펼쳐 볼 때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드는 불안을 어쩌지 못했어. 신문 속에 들어와 있는 세상을 보며 네가 낙관하며 살기는 어려울 테니까.


희망보다 절망을, 부조리한 세상에 맞설 용기보다는 허무를 먼저 배워버릴 것 같아, 차라리 세상을 속일 걸, 세상은 희망과 낙관으로 차 있다고, 좋은 것만 볼 수 있도록 할 걸,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한 때 너는 내게 이렇게 부탁했었지. 뭔가 희망적인 책을 달라고, 성공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영화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만 보자고.




그래서 뭔가 승리하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어.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이해시키려고 무진 애 썼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흘려버릴까봐, 꼼꼼히 귀 기울이며 듣는 네가, 참 고마웠단다.




그 날 밤 삶이 의미 없다며 한탄하는 네게, 마른 침 삼키며 말했지. 삶의 의미는 본래 없는 거야, 어딘가에 있어서 그걸 찾는 게 아니라고,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거야, 삶의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게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이라고. 그러자 너는 바로 ‘알았다’며, 건성으로 대답했고, 나는 아차 싶었지. 네가 삶의 의미를 못 느끼는 게 너의 무능력이며 네 책임이라고 말한 꼴이니 말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번쩍 들더라. 폭력의 세상을 예감하는 네게 내가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 순간 딱 한마디가 생각나더라. 세상이 아무리 너를 협박하더라도, 먹고 자고 사랑하는 거, 그거 포기하면 안 된다고,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려는 저들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살기 위해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그래서 말했지.




“그래도 살아야지. 잘 먹고 잘 자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좋은 사람 되도록 노력하고……. 그거 절대 포기하면 안 돼.”




훌쩍 커버린 키로 너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위로하듯 긴 팔로 내 어깨를 둘렀지. 그건 어쩌면 내가 내게 한 말이기도 해. 세상 어느 한 곳에선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나는 일상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니까. 한때는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혐오스러울 때도 있었지. 그런데 그게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거, 그걸 멈추지 않는 거.




‘솔직함’이 삶의 덕목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것,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네게 ‘솔직히’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야.




“먹고 자고 사랑하는 거. 아들아,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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