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술의 역사기행] 포은대, 포은대 비석

김문술 / 기사승인 : 2015-12-10 11: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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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15-12-10 오전 11.20.28




막상 반구대에 가면 그 유명한 암각화는 찾아볼 수 없다. 반구대는 암각화박물관을 지나 강 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말한다. 암각화는 이곳에서 강 하류쪽으로 1km정도 더 내려간 곳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암각화는 반구대에 있는 게 아니다.




반구대(盤龜臺)는 마치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등에 해당하는 265m의 반구산 꼭대기로부터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 나타나며, 이를 지나면 다시 완만하게 뻗어 내린 산줄기가 대곡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대곡천 물줄기가 크게 휘감아 돌면서 조그만 반도를 형성한 반구대는 대곡천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감입곡류 하천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일대 경관은 문화 유산과 자연 유산이 함께 어우러져 천혜의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의 복합 유산 등재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사행천이라고도 하는 감입곡류 하천 주변은 대개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강원도 영월 동강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십수 년 전 그곳에 댐을 건설하려다 환경 단체의 반대로 취소된 바 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이 시점에서 사연댐을 허무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반구대(포은대)






반구산 꼭대기로부터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던 산줄기가 거북이 목처럼 잘록해졌다가 다시 거북이 머리처럼 아담한 봉우리를 형성한 다음 대곡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는 작은 봉우리를 포은대(圃隱臺) 혹은 반구대라 한다. ‘포은대’라는 이름은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끔 이곳을 찾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0세(1376) 때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의 요도(어음리)로 유배된 정몽주는 16개월 동안 귀향살이를 하면서 작천정과 반구대를 찾아 시름을 달랬다.






포은대 비석






거북 머리에 해당하는 반구대에는 1885년에 세워진 포은대영모비, 1890년에 세워진 포은대실록비, 1901년에 세워진 반계서원유허비의 세 비석과 비각이 있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나무들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다. 이들 비석에는 포은 정몽주(鄭夢周),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한강(寒岡) 정구(鄭逑) 세 학자들을 추모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세 비석 가운데 포은대영모비 글씨가 가장 또렷하게 잘 남아있으며, 중간에 있는 포은대실록비는 글씨가 흐릿하여 판독하기 힘들다. 그리고 반계서원유허비는 전서체로 쓰여 있다.






반구서원 터






비각 근처에는 깨진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며, 그 아래 강가에는 시누대(대나무 사투리)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옛날 반구서원은 유허비각 아래 시누대 자리에 있었다. 1965년 사연댐 건설로 이 지역도 물에 잠기면서 서원은 강 건너 지금 자리에 중건하고, 비석들과 유허비각은 지금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었다. 유허비각 바로 앞에 있는 주춧돌도 원래 서원자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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