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 에세이] 두 개의 눈? 밝히는 주체의 눈과 드러나지 않는 타자의 눈

최수미 / 기사승인 : 2015-12-10 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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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Annuit Coeptis Nuvus Ordo Seclorum’는 신세계의 질서에서
번영을 약속한다는 뜻이고, 피라미드 상층의 눈은 ‘진리의 눈’을 나타낸다.

여기, 하나의 눈이 있다.

어둠을 비추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진리의 눈, 그것은 빛이고 이성이다. 이성의 빛이 비추지 못할 곳은 없다. 이성은 자신이 미치지 않는 외부와 타자를 남겨놓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은 홀로 고독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할 때, ‘앎’이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타자를 인식함으로써 타자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힘임을 뜻하기도 한다.

빛이 비추는 곳, 그곳에서 주체의 지배가 시작된다. 나는 당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을 평가할 수 있고 재단할 수 있으며 단죄할 수 있다. 당신은 내 손아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는 당신을 다 알아’ 할 때 나를 알아주는 그 사람이 반갑기보다는 섬뜩하다, ‘한 눈에 다 알아봤어’ 할 때 참 똑똑한 사람이라며 감탄하기보다는 타자를 빠르게 파악하고 싶어하는 무모한 욕망을 마주하는 것 같아 씁쓸한 것이다.

철학그림2
박미진 작품. Acrylic On Canvas, 2012

여기, 또 하나의 눈이 있다.

인간의 얼굴에서 가장 연약한 곳, 벌거벗은 채로 그대로 드러나는 곳, 피부의 가림 막 없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곳, 그것은 타자의 눈이다. 그 눈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대, 죽이지 마라.”

타자가 지닌 존재의 의미는 내게 완전히 밝혀질 수 없다. 타자의 생김새, 성격, 취향, 그의 선행과 악행, 살아온 이력 등등 그의 모든 것을 안다 해도 내게 온전히 밝혀질 수 없는 영역이 여전히 남아있다. 타자가 타자인 이유는 이렇게 주체에게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영역, 타자성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타자의 눈은 ‘내가 그를 내 멋대로 하고 있을 때조차도’ 어떤 본질적인 측면에서 나의 파악을 벗어나 ‘나의 지배’를 문제시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허용하는, 심지어 살인까지도 허용하는 절대적 자유를 심판에 부친다. 그래서 철학자 레비나스는 자유 속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발견했던 것이다.

내 눈을 살핀다. 타자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단죄하는 지배자의 눈을 닮지 않았는지. 네 눈을 응시한다. ‘죽이지 말라’는 너의 목소리를 내 눈이 들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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