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술의 역사기행] 집청정, 반구대 각석

김문술 / 기사승인 : 2015-12-23 15: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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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청정

암각화 박물관에서 반구교를 지나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집청정을 만난다. 이 정자는 영조 때 운암(雲岩) 최신기(崔信基)가 건립하였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세상에 널리 알린 문명대 교수를 안내한 분이 당시 이 정자 주인 최경환 씨였다. 또한 이 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집청정시집集淸亭詩集>은 조선 후기에 이곳을 찾았던 시인 280여 명의 한시 400여 수를 수록하고 있어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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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각석

집청정에서 강 건너 암벽에는 빼어난 필체의 글씨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아직 이렇다 할 명칭이 없는 이곳을 ‘반구대 각석’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러나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자연 훼손 행위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수많은 글자들 가운데서도 ‘반구(盤龜)’, ‘옥천선동(玉泉仙洞)’이 가장 크게 새겨진 명필이다. ‘반구(盤龜)’라는 글자와 ‘순상조공석우유애비(巡相曺公錫雨遺愛碑)’라는 글자가 있는 감실 사이에는 학 그림도 있다. 이 그림은 날개를 접고 동쪽으로 부리를 향한 학의 모습이 뚜렷하다. 바위에 새긴 그림인데도 깃털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반구대와 천전리에는 이렇게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서로 이웃한 장소에 글씨와 그림을 남겨 놓고 있다.

반구서원

집청정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왼쪽 도로가에 반구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반고서원 혹은 반계서원이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강 건너 유허비의 세 학자를 모시고 있다.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세 학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숙종 38년(1712년)에 처음 건립된 반구서원은 1728년(영조 4)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복원되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65년 이 지역 유림들에 의해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모은정

반구서원 뒤에는 또 한 채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청안(淸安) 이(李)씨 문중 정자인 모은정(慕隱亭)이다. 포은 정몽주를 사모한다는 뜻을 가진 이 정자는 건립된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두 군데 출입문의 서까래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그대로 얹어 놓았다. 원래 이 정자는 바로 옆자리에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모은정 뒤에는 사서각(賜書閣)이 자리잡고 있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는 서원 건물과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정자와 사서각이 각각 따로 울타리를 둘러 독립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연로 개수기(硯路改修記)

지금도 반구대로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반구대 맞은편 벼랑에 옛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옛날 이 길은 과거길, 장사길, 여행길로 이용되었다. 1655년에 이 낭떠러지 길을 개·보수하였으며, 그것을 기념하여 길가 바위에 기록한 것이 ‘연로 개수기’이다. ‘벼루길’이라는 뜻의 ‘연로’는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된다.
㉮ 벼루처럼 미끄러운 바윗길
㉯ 벼루에서 음차(音借)한 벼랑길
㉰ 사대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학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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