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의 행복산행] 약초와 생명의 잉태지 재약산

김봉길 / 기사승인 : 2015-12-23 18: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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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은 불교에서 우주의 중심에서 가장 높게 서있는 상상의 산이다. 산 주위 동서남북의 4대주(四大洲)를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둘러싸고 있다. 그 아래쪽에 지옥이 있고, 수미산 가장 낮은 곳에 인간계가 존재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듯 지옥보다 못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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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인간계를 벗어나 죽을 고생을 하며 올라도 결국 지옥의 문턱조차 넘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석가모니는 ‘지옥’과 ‘천국’을 다투지 말고 인간세상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풀라는 역설을 말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에 함께 오를 재약산은 마치 수미산 같다. 산 정상에 있는 신비의 늪지엔 각종 동식물을 키우며 인간에게 영약들을 내리지만, 욕심을 갖고 덤비면 영락없이 불구덩이에 빠뜨리는 신비의 산이다. 옛 이름도 마침 수미봉이다. 각종의 명약들이 지천에 있어 인간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개발 명목으로 덤비는 인간들에겐 쪽박의 형벌로 다스린다.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면 ‘황폐’라는 벌을 받는 것과 같다.

재약산은 아래쪽 7부 능선에 ‘산들늪’이란 고산습지를 품고 잊혀져가는 귀한 동식물들을 기르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해 보이는 진퍼리새, 오리나무, 복주머니난, 근방울새난, 노랑무늬붓꽃 등이 살아있으며, 삵, 하늘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있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늪이 만들어지는 게 대략 천년의 세월이니 산들늪은 그 자체로 생명의 원천이다.

1300년 전 고질병에 걸린 신라 흥덕왕의 셋째 아들이 이곳에서 흐르는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쳐 재약산이라 불렀다 한다. 산정상부의 온갖 약초들이 늪의 물과 어우러져 최고의 명약이 되고 약숫물로 흘러내려 명의조차 포기한 병을 고쳤다는 전설은 재약산의 늪이 전해주는 의미심장한 생명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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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을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표충사에서 오른쪽을 끼고 오르는 옥류동천길이다. 깊고 깊은 계곡을 끼고 오르면서 속살을 들여다보노라면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속병까지 치유되는 것 같다. 중간지점에 60m 높이의 흑룡폭포가 있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 채 고고한 자태로 수억년을 흘러 온 흑룡폭포는 상하단 30m씩의 층을 이룬 절경이 멀리서 봐도 신비롭고 황홀감에 젖게 한다. 그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바로 눈앞에서 층층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며 내게로 쏟아진다. 그리고 겨울에는 거대한 빙벽이 된다. 다른 코스로는 철구소에서 시작하여 오르는 주암계곡 코스가 있고, 표충사 북쪽 능선을 끼고 오르는 금강동천길도 유명하다.

재약산은 천황산을 묶어 산행해야한다. 두 산을 떼어놓을 수 없는 지형적 조건이 있어 옛날엔 천황산까지 포함해 재약산으로 불렀다. 천황산을 사자봉,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불렀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따로 떼어낸 것이다. 산 아래쪽에는 국내 최대의 억새군락지가 사자평이란 이름으로 유인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산들늪과 사자평은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에 의해 훼손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개발하겠다 덤볐던 이들은 모두 실패의 아픔을 맛봤다. 모든 게 수미산의 거대한 분노를 샀기 때문이리라. 욕심의 끝이 무엇인지 눈으로 봤으면서도 지금 또다시 개발을 들먹이며 산을 황폐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쪽박의 전철이 새삼 떠오른다.

출발점 표충사 주차장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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