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평화밥상] 겨울철에 맛보는 눈처럼 새하얀 별미 '마'

이영미 / 기사승인 : 2016-01-19 14: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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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채식을 하면서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곡식은 통곡식으로, 과일과 채소도 가급적 껍질째 먹습니다. 누르스름한 속껍질이 벗겨진 새하얀 먹을거리-백미밥, 백설탕, 백밀가루, 백밀국수, 백미떡, 백밀빵 등등-를 만나면 아주 중요한 것들이 아깝게도 버려진 먹을거리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원래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새하얀 색이 너무나 반가운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하얀 눈을 만나는 것처럼 겨울철에 반가운 자연 그대로의 새하얀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윗부분은 땅 위로 드러나 초록빛인데 그 아래 부분은 땅 속에서 통통하게 자라다가 이제 막 세상에 몸 전체를 드러낸 무를 보면 참 신기하고 반갑습니다. 그리고 또 반가운 게 있습니다. 땅 속에서 마! 흙이 묻은 흙빛의 마를 껍질에 묻은 흙을 살살 물에 잘 씻어내 껍질째 동글납작하게 썰면 드러나는 하얀 빛! 강판에 갈 때 끈적끈적 하얀 점액질덩어리!




마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많이 있겠지만 추운 겨울에 주부가 간단히 할 수 있는 마요리! 마를 강판에 갈아서 밥 위에 모신 뒤 양념장 살짝 끼얹어 조금씩 비벼가며 천천히 꼭꼭 씹으면 끈적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을 감싸며 속이 든든해지는 듯한 오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먼 곳에서 오신 일흔나이 어르신 한 분께 밥상을 차려드릴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의 많은 농부와 여성들이 너무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구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여성농민운동가로 살아오신 임봉재 선생님은 우리 땅의 생명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토종 씨앗의 귀함을 오래 전부터 지켜 오신 분입니다.




어르신께 드릴 밥상을 차리기 전에 귀한 마를 보내주신 안동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농사 짓는 지인께 전화드리니 토종씨앗을 받아서 농사에 애쓰시는 분들이라 평소 존경한다며 반가워하셨습니다. 현미밥에 강판에 간 마를 사뿐히 모시고, 들깨미역국, 김장김치 그리고 몇 가지 반찬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렸습니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에 눈이 맑으신 어르신은 눈처럼 새하얀 마밥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늘 마음 속 소중한 분과 처음 만나는 귀한 분들을 밥상에서 함께 마주 할 수 있어 참 고마웠습니다. 하얀 머리 어르신께서 떠나신 후, 고전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을 뵈러 가면서 강판 간 마와 현미채식도시락을 챙겨 갔습니다.




하얀 머리 어르신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 떠나는 분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오호 그 마음이 닿더군요. 오랫동안 가톨릭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같이 해 오신 형제님이요 자매님 두 분이 오랜만에 울산에 오신 걸음에 만나러 오셔서 우연찮게 덤으로 하얀 머리 어르신을 한 번 더 뵐 수 있었지요.




이 땅에서 우리 농촌을 지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 애써 오신 두 어르신을 한 자리에서 뵙고 소박한 밥상 차려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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