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 에세이] 오류와 착각 그리고 상상의 세계

최수미 / 기사승인 : 2016-01-27 16:05:43
  • -
  • +
  • 인쇄

바로 어제 사랑을 확인한 젊은 연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녀는 그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그를 피한다. 그가 손을 들어 아는 체 했지만, 그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모른 체 했다. 당황스런 그가 잠시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바로 눈길을 돌려버린다. 그 사이에 사랑이 변했나? 그의 가슴은 불안으로 터질 것 같다. 그녀는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났다. 머리도 못 감았고, 화장도 못했다. 지각이라 허둥지둥 나왔고, 그녀의 짝짜기 눈썹이랑, 주끈깨랑, 부스스한 머리랑 그녀의 모든 것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가 실망할까봐 그를 피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섰다. 잠깐 그와 눈길이 스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망으로 놀란 그의 눈빛을 보니 발아래 땅이 푹 껴져버린 느낌이다.

Adele-new-single-Hello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커피를 사주는데, 달달하다. 설탕을 피한 지 오래인데다, 특히나 달달한 커피는 내 입맛과 거리가 꽤 멀다. “커피에 설탕을 넣었나 보지?” “응, 날씨가 추워서 달달하게 먹고 싶더라꼬. 좋지?” “커피가 부드럽네.” 잠시 망설였다. 나 설탕 넣은 커피 안 좋아해. 설탕은 몸에 안 좋아. 이런 말들이 입술 밖으로 막 튀어나오고 싶어 안달이었으나 꾹 참는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 마음을 좋게 할 것인가? 진실을 말할 것인가? 갈등하는 내 모습이 보여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물론, 나는 진실을 피한다. 친구의 마음을 좋게 하고 싶은 게 나의 더 큰 진실임을 곧이어 깨닫는다.

인간은 자신의 주관적인 사고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근대 이후 철학사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주제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아직 어느 철학자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류와 착각으로 가득 찬 주관적인 사고는 당연히 극복되어야 마땅하다고 하나, 그건 ‘인정’은 하나 ‘실천’은 못하는 다다를 수 없는 목표들처럼 아득히 멀리 있다. 다만, ‘진리를 추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끔 그 진리에 자신이 도달했다는 착각을 일으킬 뿐, 인간의 대부분의 생활세계는 오류와 착각으로 가득 차 있고, 어쩌면 이게 더 당연한 현실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도 그러하고, 그녀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내가 그러하다. 나는 오늘도 오류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오류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 난 단 한 번도 온전한 진리를 만난 적도, 타인과 완벽한 일치를 이룬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온 걸 보면 난 참 운이 좋았다.

이걸 인정하고 난 이후 나는 색다른 인드라망을 상상하게 되었다. 서로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무오류의 조화로운 세계가 아니라, 각자의 주관적 합리성으로 이뤄진 어긋남의 세계, 그럼에도 각자가 서로 일치한다고 상상하는 세계, 바로 그 간격에서 구슬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세계, 착각과 오류로 관계를 빚어나가는 신비로운 인드라망의 세계.

나는 오늘도 누군가 나를 눈여겨 볼 것이라 착각하며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는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 상상하며 부지런히 일어나고, 약속시간을 확인하며 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두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착각과 상상이 나를 끊임없이 타인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착각과 오류의 세계에 대한 자각이 나를 뒤에서 끌어당기며 한 번 더 묻는다. “너 옳은 거 맞아?”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