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 에세이] 숭고한 아름다움 속에서 열리는 내일을 위한 시간

최수미 / 기사승인 : 2016-02-24 15: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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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 ‘나는 단 한번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우리들의 하느님)고 말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철저한 자기반성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지만,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 어려운 건가?’라며 위기의식 또한 느꼈던 것이다.

아무리 착한 행동이라도 이기적인 원인을 갖는다는 ‘윤리적 이기주의’가 타당성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윤리적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신의 옳은 행동과 희생은,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위해서 하는 거 아니냐”는 냉소적 태도는 위험하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그만 변화조차도 그러한 행동에 의해 가능하며, 그로 인해 우리는 그나마 숨 쉬며 산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를 보기보다는 ‘본질’을 파악한다고 생각하며, ‘윤리적 행위 또한 이기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식의 근본주의적 태도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가슴 없는 차가운 이성에서 파시즘은 더 싹트기 쉬운 법이다. 또한 윤리적 이기주의가 아무리 타당하다 해도, 우리는 이런 질문을 마땅히 해야 한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번역한다. “타인을 향한 진정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회사를 3개월간 휴직했었고 이제는 병이 나아 복직하려 하나, 회사는 17명이 하던 일이 16명으로 가능했다며 그녀를 해고한다. 그녀를 해고시키기 위해 회사는 동료들에게 보너스와 해고를 저울질하며 투표하게 했고, 반장은 그녀가 해고당하지 않으면 당신이 해고될 것이라며 노동자들을 협박한 가운데, 해고가 결정된다. 과정의 부당함으로 재투표를 실시하게 되었고, 그녀는 주말 이틀 동안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그녀를 위해 투표해줄 것을 요청한다. 동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가운데, 지지와 배반이 엇갈리고 이에 따라 그녀는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우울증 약으로 버티다 결국은 약병을 통째로 먹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그때 그녀를 찾아온 한 사람. 보너스를 강요한 남자친구 때문에 산드라의 해고에 찬성했던 줄리엣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산드라를 돕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내일을 되찾은 산드라.

투표 결과는 과반수가 되지 않아 해고가 다시 결정되었고, 위기를 느낀 회사는 그녀에게 특별한 제안을 한다. 계약직 한 명의 계약기간이 곧 완료되니까, 그때 다시 복직시켜주겠다는 것. 그 계약직 노동자는 해고 위협을 무릅쓰고 그녀를 위해 투표했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그녀는 “남을 해고시키고 복직할 수 없다”며 회사의 제안을 당당히 거절한다. 그래서 계약직 동료에게 내일을 되찾아주는 산드라.

회사를 당당히 걸어 나오며 산드라는 남편에게 전화한다. “여보,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이 순간, 영화 내내 우울증으로 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흔들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던 가난하고 고달픈 산드라는,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녀가 되찾은 용기는 그녀에게 영원한 내일을 열어주는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쉬운 해고’가 밀려온다. 곳곳에서 우울증을 호소한다. 이곳에도 ‘내일을 위한 시간’은 열릴 수 있을까?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숭고한 아름다움 또한 그리 흔하지 않은 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본다. 숭고한 아름다움은 어려운 곳에서만 피는 꽃이기에, 아마 그 어려운 곳에 피어오르는 꽃들, 줄리엣과 그 이주노동자 그리고 산드라처럼 반드시 있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딛고 윤리적 행동으로 일어나게 하는 숭고함으로, 내일을 여는 아름다운 꽃들이 있을 것이다. 이 믿음을 나는 결단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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