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미의 철학 에세이] 철학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5년을 생각하며

최수미 / 기사승인 : 2016-03-09 17: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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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을 들고 핵으로!” (<체르노빌의 목소리> 중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해결하는 기술대국 일본의 21세기 첨단기술은 삽, 검은 비닐 봉다리, 그리고 노동자들의 손이다.




플라톤이 말하길, 인간은 ‘놀람’에서 철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놀람이 두려운 대상에 대한 놀람일 때 인간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것을 사유할 수 없을 때 오히려 그 두려움의 포로가 될 수 있음을 스피노자는 경고한다.




핵폭발 사고를 겪은 체르노빌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철학을 시작한다. 어느 날 너무나 조용하게 닥친 재앙으로 죽음을 자식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부도, 과학자도, 철학자도, 교수도, 책도, 영화도...- 말해주지 않는 그 재앙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죽어간, 죽음을 앞둔, 죽어갈 아이들이 수백만 명이고, 해체작업에 투입되었던 80만 명의 노동자들과 군인들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벨라루스에만 11만5493명이 해체작업자로 근무했고, 1990년에서 2003년 사이 8533명의 해체작업자가 사망했다). 그들이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도 말하지도 않는 괴이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그들은 체르노빌을 옆에 두고 사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변했어요.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체르노빌의 목소리> 3부 ‘슬픔의 탄식’)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5년,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체르노빌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들에게 증언한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너무 익숙해져서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삶을 이룬 문명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지적(知的) 용기를 내야 한다고, 살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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