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시] 가시박

이인호 / 기사승인 : 2016-04-06 15: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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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우수관
소곡소곡 쌓인 먼지 속
버려진 것들의 피난처에서
환하게 솟아오른 가시박
구멍의 깊이 따윈
문제없다는 듯 손길을 내민다

갈 곳 없어 한참을 서성거린
버스정류장에서
발목을 타고 오르는 둥근 줄기
너의 계보를 알려주는 가시가
살갗을 파고들어
네가 어둠속에서 싹 피운
도시의 이름이 떠오른다

바닥 아래 얽힌 주소에서
너를 안았던 시간들
갈비뼈가 닿을 때마다
녹아 내리던 잿빛 진창,
바깥을 향해 돌던 혈관이
굵어지면 돋아나는 가시들
국경의 기슭을 넘는다

체류기간이 끝난 비자처럼
아슬아슬하게 덮여진 지붕
자꾸만 들이치던 햇볕을 피해
버스에 오른다
주소의 등 뒤에서 자란 도시
가닿지 못하는 이름을 나타내면
바닥을 뚫고 자란 본능을
버스 단말기에 가져다댄다

적립된 비명이 감사인사를 건넨다
이 도시에서 동정은 모두 후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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