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란의 함께 읽는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김규란 / 기사승인 : 2017-05-17 08: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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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 2015>




5월, 대선이 끝나고 축제 주간이 시작됐다. 맞춘 듯 안 맞춘 듯한 커플룩들이 축제장에 넘쳐 난다. 이들은 대체로 검은 슬랙스 바지와 흰색 테니스 치마를 선호한다. 테니스 치마가 포토존 아래서 자세를 취하면 슬랙스 바지는 최대한 괜찮은 모습을 작은 휴대폰에 담는 행위에 열중한다. 일련의 엄숙한 의식이 끝나면 서로 옷깃을 스치며 여기저기 쏘다닌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츄러스도 먹는다. 달이 뜰 때쯤, 바지는 치마를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 내일도 보자며 입맞춤을 한다. 아, 부럽다.



솔로들에게 축제 주간인 5월은 벚꽃 주간인 3월만큼 고통스럽다. 대선이 끝났지만 바뀐 건 없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내 인생은 안 바뀌었다. 이성에 미쳤다고 욕하지 말길. 근거로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하고, 철학의 체계를 세우거나 정치 제도를 만들면서, 그 모든 행위가 자아를 초월하는 고상한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다.”(12쪽,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



나비가 꽃을 따르고 꽃이 나비를 유혹하듯 이성 간의 끌림은 당연하다. 수많은 가수가 사랑을 노래하는 것처럼, 끝없는 배우들이 사랑을 연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소비자들이 낡을 법도 한 사랑 타령을 구매하는 것처럼. 프로이트가 여성 편력과 성적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지만, 그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자를 생업으로 삼은 이유에 꿈도 있지만, 남자도 있다. 어찌 아나, 취재원 중에 미래의 남편이 있을지.



온전한 사랑은 정신적 사랑인 플라토닉과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가 일치해야 완성된다. 마침 책에 좋은 사례가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아마 이 무렵에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내 앞 가리개 때문에 거시기가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지금 너에 대해서 대단히 강한 욕구를 느끼고 있어>라는 정도였을 것이다.”(600쪽, 인간의 성행위) 다윈의 진화설에 의하면 본래 인간은 4족 보행을 했고 거시기가 커져도 앞 다리 때문에 안 보였다. 2족 보행을 하면서 성적 욕망이 보였고, 우리가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는 건 단순하게 너랑 관계를 맺고 싶다는 뜻이다.



플라토닉이든 에로스든 둘 다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다. 이쯤 서설했으면, 몇몇 독자 분들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가늠해보자면, ‘여자가 남자를 왜 이렇게 밝히냐?’쯤 될까.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셀프 걸X 인증’쯤 된다. 고장 난 자물쇠와 마스터키의 차이. 모양새 때문인지 통상 여자는 자물쇠로 남자는 열쇠로 비유된다. 쉽게 말해, 남자를 자주 바꾸는 여자는 헤픈 여자로, 여자를 자주 바꾸는 남자는 능력 있는 남자로 지칭된다. 남자든 여자든 서로 사랑하는 이성을 찾는 건 기적인데 말이다.



여성주의는 본질에서 성립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상호의존적 관계다. 남자들이 혐오하는 두 가지, 남자 밝히는 여자와 여성주의자. 이를 어쩌나, 나는 둘 단데. 재미있는 점은 시시각각으로 울려오는 그들의 ‘오늘 뭐 해?’ 연락이다. 어차피 좋다고 거시기를 키울 거 다들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다. 한 달간 ‘대선 끝나고 보자’로 미뤄 놨다. 옷장에서 짧은 흰색 테니스 스커트를 꺼내야겠다. 하나씩 만나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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