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에세이] 약국이라는 그 곳,

강현숙 약사 / 기사승인 : 2018-02-21 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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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날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애벌레의 시간들과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따뜻한 햇살에 비치던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고, 찬란하고, 아름답던 시간들이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거룩한 시간을 추동시키던 원심력들의 날들이었다. 결국 날아가버릴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욕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나의 이미지들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들은 수많은 이들의 얽힌 욕망들로 투영된 거울 속 같은 공간들이다. 한없이 덧칠되어 긁어내어도 보이질 않는 욕망의 색상들로 뒤얽힌 채색의 공간들이다. 누구도 일그러지지 않은 얼굴들이 없고 누구에게도 혼돈스럽지 않을 순간이란 없고 그런 곳에서 우리는 이리도 분명한 얼굴로 이리도 확실한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하고 살아간다는 듯이, 또 한 번 이 공간을 엎어버리고, 또 한 번 이 시간을 뒤집어버리는 곳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자화상이다.



약국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밖에서 단순하게 바라보며 분류하여 말하기를 약을 주고받는 곳이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있는 공간을 집, 직장, 거리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오고가는 뒤로 감춰진 수많은 욕망의 교류들을 감춘 채 말이다.



일순간도 욕망하는 것을 쉬지 않는 누군가의 몸이 아파서 찾는 약국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보면 몸을 통해서 다친 욕망들을 읽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타인의 욕망들이 절룩거리는 모습들을 읽어낼 때면 안타깝고 슬프고 때론 추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늙은 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집착하며 약이란 도구를 억지로 사용하여 제 욕망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약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할 줄 안다는 힘을 이용해서 거부감이 드는 그런 순간들을 제어해버리고 싶은 적도 있다.
현시대인들의 얼굴은 달관한 듯 가면을 쓰고서도 자기마음대로 타인을 욕망하며 휘두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하는 듯이 온갖 감언이설로서 타인을 방심하게 한 뒤 슬쩍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몸을 통해서 훔쳐내기도 한다.



나는 차라리 그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더 편안하며 욕망이 없다는 듯이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멀리해버린다. 남들의 눈에도 보이는 가면을 쓰고 남들의 마음에도 읽히는 가면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타인에게 많은 것을 들키면서 스스로 절제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도 주체 못할 욕망들로 넘치면서 추해지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현실이든 아직까지는 신비하고 모호하고 뭔가 절제되어 매력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어, 자연스레 조용히 말과 모습으로 은은하게 베어져 나오는 것이 나에게는 탐미적으로 이 세계와 만나게 되는 방법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가끔 약으로 이 세계의 욕망들이 난무하는 뒤얽힌 어지러운 공간을 채색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주체적인 화법을 창조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아직 젊은 청년들이 현재의 욕망으로 몸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함부로 쓰며 망가질 듯한 모습으로 약국을 찾아오면 가끔 내가 지나온 시간을 투영시켜 지금의 소중함을 일컬어 추슬러야 함을 알리고 때론 경고하기도 한다. 그 청년이 나의 그림을 이어받아 무슨 그림을 펼칠지는 또 다른 그림인 것이다.



나이 든 노인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며 주변의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나이를 힘으로써 누르려고 하면 자신의 세월을 책임질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대해 거리를 두고 거리로써 경계를 두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몸의 약함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인데도 어미가 어리광으로, 효도라는 명분으로 자식을 자꾸 곁에 두려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어미와 자식 간의 거리와 자식의 시간과 자식의 독립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의 거리를 던져줄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약사인 자신의 개인적인 온갖 감정의 욕망들이 춤추는 스스로의 내면을 늘 성실하게 들여다보아야 된다는 일이다.



이러한 혼돈의 세계일지라도 밖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은 세계의 어딘가의 또 하나의 중심이 되어 원심력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혼돈의 세계 안에서도 우리가 찾을 수는 없으나 어딘가에 감춰진 채 존재하는 태풍의 눈이라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비로운 곳이 세계인 것이며 그러한 중심이 또한 몸인 것이며 나는 오늘도 그러한 중심을 스스로 추동하며 이 혼돈의 시공을 끌고 가는 약사로서 이 시간을 소중하게 올라타보는 것이다.




강현숙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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