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병영(兵營)’이라는 지명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 기사승인 : 2018-05-23 11: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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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병영성벽

<발굴된 병영성벽.>






병마절도사선정비

< 병마절도사선정비.>




‘병영(兵營)’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곳이 육군 주둔지였기 때문이다. 울산 병영은 조선 500년 동안 우리나라 동남부를 지키는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되면서 군사적 기능은 없어지고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일대를 병영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가 남긴 발자취 때문이겠다.



병영성은 1987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그 범위는 대체로 성벽의 북쪽 2/3정도에 해당된다. 병영성 전체가 아닌 성벽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성 내부는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조선시대 때 세워진 관아시설은 해체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병영성은 남북축이 긴 타원형이다. 지금 남문 쪽은 그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고, 북문 쪽은 민가 담장이나 경작지 축대에서 옛 성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동·서·북문 터 주변에서는 옹성(甕城)형태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또 성곽 곳곳 중요 지점에는 성 바깥 벽에 덧대어 사방 8m 규모의 치성(雉城) 또는 누각(樓閣) 터가 있는데 기단부만 남아 있다. 북쪽 성벽 밑으로는 1차 방어선인 해자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해자는 물이 없는 마른 해자인데, 성 바같에 있어서 외황(外隍)이라고 한다.




하상면사무소, 하상면주재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병영성 안쪽을 관할하던 내상면(內廂面)과 연암, 효문, 내황, 반구동을 관할하던 하부면(下府面)이 합쳐져 하상면(下廂面)이 되었다. 새로 통합·개편된 하상면사무소는 병영초등학교 정문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 온 곳에 있었다. 그후 면사무소는 지금의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로 옮겼다.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 마당에는 조선 후기 병마절도사들의 선정비 17기가 나란히 서있다. 이 비석들은 원래 병영성 안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모두 이곳에 모아 정비하였다.



옛 하상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 와 병영로와 만나는 곳에 하상면주재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주재소는 지금의 파출소에 해당된다. 병영초등학교, 하상면사무소, 하상면주재소로 이어지는 이 거리는 병영만세운동의 주요 동선이었다. 병영주재소는 병영만세운동 당시 시위 군중을 탄압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주재소 건물은 1911년에 세워져 온갖 탄압과 악행을 저질러 병영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병영주재소는 이후 병영우체국 옆 자리로 옮겨 파출소로 명맥을 이어왔으나 지금은 빈 건물로 남아있다.




병영장, 병영우체국



병영1동 주민센터 옆으로 병영시장이 있다. 상설시장인 병영시장은 조선시대 때 병영 5일장에서부터 출발한다. 동해안의 대표적 염전이 있었던 염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영장에서는 소금이 많이 거래되었다. 3일과 8일 장이었던 병영장은 일제강점기까지 번성했다. 1934년에는 가뭄이 심해 병영장을 동천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예전에는 가뭄이 심하면 장을 옮겨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현재 병영시장은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축소된 채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 병영 5일장에서 출발하여 일제강점기에는 울산장 다음으로 번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줄어들고 말았다.



병영시장 건물 근처 병영로 4(남외동 247-9번지)에는 병영우체국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병영우편소였다. 하상면은 다른 지역에 비해 우편소 설치가 늦어 지역 주민들이 불편해 하다가 1931년에 우편소가 설치되어 업무를 개시하였다. 당시 우편소에서는 우편환, 전신, 전화 등의 업무를 취급하였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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