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동단 역, 울산항역

황주경 시민. 시인, 울산민예총 부이사장 / 기사승인 : 2018-05-30 11: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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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땅 끝은 바다의 시작이며 정상은 내리막의 시작이다. 어떻게 보면 죽음도 이승의 끝이 아니라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다리 위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투신한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아마도 이 영혼들은 고단한 보부상이 주막 툇마루에 신발을 벗어놓고 봉놋방으로 들어가듯 죽음 저 너머를 피안의 공간으로 여겼을 거다. 사람들은 이런 연유로 ‘극단’이라는 명사에 비상한 관심과 의미를 둔다. 에베레스트산,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판문점, 해남 땅끝 마을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다.



북한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최극단 기차역들은 어디 어디에 존재할까? 먼저 최북단 역은 철원의 백마고지역이다. 최서단 역은 목포역, 최남단 역은 여수엑스포역이다. 그렇다면 최동단 역은 어디일까? 울산사람도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나라 최동단 역은 울산항역이다.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에 위치한 울산항역은 1951년 8월 10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54년에 역사가 지어졌으며 현재는 무배치 간이역이다. 동해남부선 울산구간에는 여천오거리 지점에서 울산사람도 잘 모르는 두 개의 선로가 바닷가로 분기되는데 울산항선과 장생포선이다.




16철자가 달아난 울산항역 간판

<철자가 달아난 울산항역 간판>




16울산항역 전경, 뒤로 외국에서 온 액체화물이 적재되어있다.

<울산항역 전경, 뒤로 외국에서 온 액체화물이 적재되어있다.>




16울산항선 선로 끝 모습

<울산항선 선로 끝 모습>




울산항역을 찾기 전 장생포선을 먼저 따라 가보았다. 현재 장생포선은 S정유사 정문 앞 건널목에서 단선 상태다. 1952년 9월, 6.25 전쟁 때 유류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생겨났다. 1964년 대한석유공사 공장이 가동될 때까지만 해도 역사가 공장 밖에 있었다. 대한석유공사가 민간 정유사로 바뀌면서 역사는 정유사 내부로 들어가 민간인의 접근이 원천 차단됐다.
단선된 선로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던 중에 나타난 정유사 보안요원에 의하면, 마침 필자가 찾기 하루 전에 당국이 건널목 철로 철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철로 대신 아스팔트가 깔린 건널목, 2018년 5월 18일 장생포 선로는 울산시민 그 누구도 모르게 그렇게 운명을 다했다.




16선로철거작업이 진행된 장생포선

<선로철거작업이 진행된 장생포선>



장생포선에서 울산항역으로 향했다. 울산대교 밑에 위치한 울산항역은 대한민국 최동단 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초라한 모습이다. 여객취급이 없는 화물전용역이며 열차편 또한 부정기적이다. 간혹 여객열차를 운행하기도 했다는데 관광용 특별 열차편이었다. 울산항역은 장생포역과는 달리 부두까지 이어진 선로가 없다. 한 해 처리하는 화물량은 약 20만 톤이며 컨테이너 야드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자료사진을 보면 옛 역사는 전형적인 간이역의 모습이었으나 현재는 붉은 벽돌집으로 컨테이너 숲에 갇혀있다. 역명판은 철도청 시절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받힘도 빠져있어 관리의 흔적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장생포. 5월에 찾은 장생포 바다는 가족단위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고래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넘쳐났으며 모노레일을 탄 관광객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16장생포에서 낚시삼매경에 빠진 부자

<장생포에서 낚시삼매경에 빠진 부자>



장생포는 우리나라 근대 포경산업의 전진기지였다.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50여 척의 포경선이 장생포항을 드나들었다. 포경선이 힘찬 뱃고동과 함께 항구로 들어오면 기중기가 집채만한 고래를 뭍으로 끌어올리는 장면이 다반사였던 어촌이었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풍요로움을 자랑했던 장생포, 이곳 사람들은 고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해체작업장에서 일하고, 고래 기름을 짜내고, 고깃덩이를 이고 지고 인근의 마을로 팔러 다녔다. 포경이 금지되고 잠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장생포는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래문화특구를 조성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상업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가는 유물을 수집, 보존·전시해 포경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고래박물관을 비롯해 5D영상관, 퇴역울산함, 고래생태체험관이 있고, 여기에 직접 바다로 고래를 찾아갈 수 있는 고래바다여행선, 옛 장생포 마을을 재현한 고래문화마을 등이 조성되어있다.




16포경선 전경

<포경선 전경>



매년 여름마다 장생포에서는 고래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7월 5일~7월 8일까지 4일간 개최된다. 선사유적 반구대에 새겨진 고래 문화를 계승하고 근대 포경기지였던 포구의 특색을 살린 지역 축제다. 하지만 고래축제는 해마다 술고래라는 대형 천막을 차려놓고 고래고기 먹는 축제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축제의 이중성에 대해 살펴보면, 국내에서 식용되는 고래고기는 정상적으로 혼획된 양을 초과한다. 불법 포획되는 고래가 유통된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울산에서도 고래고기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홍어나 과메기처럼 식감에 대한 기호가 아니라 상대적 문화 차이가 아닐까. 고래고기의 오랜 식습관도 인정되지만 “고래축제에서 고래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애견축제 현장에서 보신탕을 먹는 것과 같다.”라는 환경운동가의 말도 다시금 새겨볼 일이다.



고래박물관에서 언덕을 조금 오르면 고래문화마을이 나타난다. 1970년대 장생포를 재현한 마을이다. 교복 체험, 펌프우물 체험, 고무줄 놀이와 같은 추억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발소, 사진관, 우체국, 전파사, 구멍가게, 방앗간, 옛 장생포초등학교, 고래해체장, 고래착유장 등 총 23동의 건물과 당시의 생활소품, 거리 풍경을 실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래잡이 장생포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16장생포 고래문화마을, 교복체험 중인 커플
16장생포 고래문화마을, 교복체험 중인 커플2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교복체험 중인 커플>



필자는 1970년대 동네 노래자랑 액자가 걸린 추억의 다방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필자가 자란 고향에서도 명절 앞에 동네콩쿨대회라 불리던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상품은 양은 주전자와 고무대야 등과 같이 소박했지만 동네를 들썩이기엔 충분했다. 체험마을에는 교복을 빌려 입고 70년대 학창시절로 돌아간 중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고래와 함께하는 동심, 추억의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 가보시길 적극 추천한다.



고래바다여행선. 고래문화마을을 내려와 고래바다여행선 앞에 섰다. 마침 흰 제복의 마도로스, 여행선 선장이 선착장에서 밸로 올라 가고 있었다. 통성명을 하고서 출항여부를 물으니 “먼 바다에 파도가 높아 출항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친절한 선장은 직접 고래바다여행선을 내게 안내하는 행운을 선물했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박성호(62세)씨는 선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15분께 장생포항 기점 동북동쪽 18.6㎞ 해상에서 참돌고래떼 약 2000여 마리를 발견했다는 선장은 “힘차게 유영하는 고래떼의 모습을 보고 관람객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가 가장 기분 좋다.”고 한다. 고래바다여행선의 최고 승선인원은 365명, 550톤 규모로 공연장, 회의실, 휴게실, 수유실, 뷔페식당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단체 모임 등에도 인기가 높다.




16박성호(62세) 고래바다여행선 선장

<박성호(62세) 고래바다여행선 선장>




16고래바다여행선장이 보내온 고래 사진

<고래바다여행선장이 보내온 고래 사진>




고래바다여행선을 나오면서 문득 일본여행 중에 들었던 “일본사람들은 최극단 역에도 의미를 부쳐 관광객을 부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약 울산항역이 지금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고래박물관 앞에 아름답게 위치한다면, 그곳에다 우리나라 최동단 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대대적인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면? 아마도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주말마다 “고래찾기”라는 특별열차편을 편성하지 않을까. 고래관광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고래바다여행선으로 환승하고. 관광선에는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라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신나게 울려 퍼질 것이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땅 끝은 바다의 시작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황주경 시민기자. 시인, 울산민예총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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