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박산성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 기사승인 : 2018-09-19 18:28:31
  • -
  • +
  • 인쇄
역사기행
기박산성
기박산성


울산시 북구 호계와 경주시 양남면 사이에 있는 고개를 ‘기박이재’ 혹은 ‘기백이재’라 부른다.


이 고개에서 신흥사로 내려갈 수도 있고, 마우나 리조트와 삼태봉 등산로와도 연결된다. ‘기박이재’는 ‘깃발이 박혔던 고개’라는 뜻으로 고개 정상 부근에 ‘기령(旗嶺)’이라 새긴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기박산성에 얽힌 전설


기박산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 즉 울산 병영은 본래 지금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인 토을마리(土乙磨里)에 있었다. 조선시대 들어서 병영을 옮길만한 곳을 찾다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 곳이 기박이재 자리였다. 기박이재는 동대산과 삼태봉 사이 고개로 치술령으로부터 이어져 온 관문성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산세가 순하여 경주시 양남면쪽에서 상륙한 적이 쉽게 산을 넘을 수 있는 지형이다.


전술상 이곳이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성터를 잡고 공사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불어 와 깃발 하나가 지금의 병영동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에 깃발이 떨어진 곳이 하늘이 정해준 곳이라 여겨 경상도 좌병영을 지금의 울산시 중구 병영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전설대로 한다면 병영성 축조를 시작했던 곳은 지금 ‘기령(旗嶺)’이라는 비석이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기박산성, 신대리성, 대점성


‘기령(旗嶺)’이라는 비석이 있는 곳에서 삼태봉쪽으로 300m 올라간 곳에 오래 된 옛 성이 있는데, 이곳이 기박산성이다. 지금 기박산성이라고 하는 이 성은 신대리성(新垈里城), 혹은 대점성(大岾城)이라고도 한다.


아주 오래된 이 성은 문무왕 13년(673년) 9월에 쌓은 북형산성과 같은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은 20~50cm크기의 돌을 다듬거나 자연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성을 쌓을 때는 위로 올라가면서 1~2cm씩 줄여나가는 물림쌓기 방식이다. 이 방식은 안정성 있는 성의 축조 기술로, 축성술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주는 건축 기법이다. 성 안에는 성문자리와 수구(水口), 우물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유구와 건물지가 발견되었으며 기와 조각도 많이 출토 되었다.


이 성은 전술상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시대까지도 계속 사용되었고,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 보이지만 성곽 본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유서 깊은 이 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첫 번째는 관문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관문성과는 서로 다른 별개의 성으로 보는 견해다. 이 성을 관문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성으로 보는 견해는 관문성 돌파에 실패한 적이 이쪽 방향으로 침투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개의 성이 연결되지 않은 것은 지형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관문성과 이 성을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두 성의 구조와 위치가 다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성은 관문성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