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성(丹鳥城)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 기사승인 : 2018-11-28 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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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단조늪에서 바라본 영축산
단조늪에서 바라본 영축산


단조성터
단조성터


울산을 중심으로 경남 양산시, 밀양시 그리고 경북 청도군에 걸쳐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들이 이어져있는데, 이곳을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알프스’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기들 나라의 ‘일본 알프스’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일본 알프스는 혼슈 중부 지방의 나가노현, 기후현, 도야마현에 걸쳐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기타(北) 알프스’, ‘중앙 알프스’, ‘미나미(南) 알프스’로 구분된다. 일본 알프스에 있는 산들은 모두 해발 2000m가 넘으며, 3000m이상 되는 산도 여럿 있어 ‘일본의 지붕’이라 불린다. 메이지 시대 때 이 지방을 여행한 영국인들에 의해 ‘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도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영남 알프스의 여러 산들 가운데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에는 넓은 억새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단조봉과 영축산 사이 넓은 평원에 돌담처럼 보이는 것이 단조성이다. 이곳을 취서산 고성(鷲栖山古城), 혹은 단지성(丹之城)이라고도 한다.


단조성은 신라가 가야를 경계하기 위해 처음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이 성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전국적으로 축성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었던 시기에 과거의 산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이때 이곳도 재정비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단조성은 언양읍성과 짝을 이루어 외적을 방어하는 산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언양읍성이 처음 축조된 1390년(고려 공양왕 2) 이전의 입보(入保) 피난은 이곳 단조성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서북쪽은 허물어졌으나 동남쪽은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영조 3년(1727) 암행어사 박문수가 단조성을 둘러보고는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장부가 만 명을 당할 수 있는 곳’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곳은 천혜의 요새지이다. 또한 이 지역은 한국전쟁 때 남도부 부대로 알려진 빨치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단조성에 대하여 ‘언양에서 남쪽으로 13리 떨어진 취서산에 있고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4천50척이고 성안에 못이 10개 있다’고 하였다. 순조 31년(1831) <경상도읍지> 중 <언양읍지>에는 석축으로 둘레가 4천50척이고 성 안에 천지(天池)가 있어 비, 가뭄에도 물의 증감이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단조성은 해발 1000m 정도나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물이 풍부하다.


우리나라에는 산성(山城)이 많은데, 산성의 성립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성 안에서 자체적으로 물을 해결할 수 있어야 산성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식량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식수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산 위에서 물을 찾는 것이 그리 쉬운 게 아닌데, 이곳 단조성에는 풍부한 물이 있어 산성으로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성 안에는 물이 풍부한 단조늪이 있다. 해발 940~970m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단조늪의 습지부는 약 7000㎡나 되며 주변에는 고산 초원이 발달했다. 동쪽은 암벽으로, 서쪽은 참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있고, 북쪽은 단조봉과 신불산 그리고 남쪽으로는 영축산과 연결되는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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